(사진=JTBC)
[뷰어스=손예지 기자]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가 직접 제작한 아이돌 서바이벌 ‘믹스나인’ 우승자들의 데뷔가 무산됐다. 시청자들의 약속은 물론, 데뷔의 꿈을 안고 수개월을 서바이벌에 집중한 연습생들의 희망을 짓밟은 행태다.
‘믹스나인’은 YG와 Mnet ‘프로듀스101’를 만든 한동철 CP가 손잡고 만든 프로그램으로, 양현석 YG 회장이 전국 각지의 연예기획사를 돌며 뽑은 연습생들로 경연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추려진 연습생 9명이 4월 데뷔해 4개월간 활동할 예정이었다.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방영 내내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기준 시청률 0~1%대를 기록하며 지지부진했다. 같은 해 방송가와 가요계를 휩쓴 ‘프로듀스101 시즌2’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낮고, 비슷한 시기에 방송한 KBS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이하 더 유닛)’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흥행 참패를 맛봤다. 이런 가운데서도 경연에 최선을 다한 우진영·김효진·이루빈·김병관·최현석·송한겸·김민석·이동훈·이병곤 등이 최종 9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프로그램 종영 후, 이들을 데뷔시키겠다는 YG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데뷔 무산설’이 불거졌다. 당시 양 회장은 자신의 SNS에 “상생, 꼭 이루어내야 한다. 노력하겠다. 기다려 달라”는 글을 적었다.
하지만 결론은 무산된 게 맞았다. ‘믹스나인’ 9명은 데뷔하지 못한다. 앞서 ‘더 유닛’의 보이그룹 유앤비가 데뷔했고, 걸그룹 유니티가 데뷔를 앞둔 것과 상반된 행보라 대중의 실망이 더욱 크다. YG는 지난 3일 “YG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 ‘믹스나인’ 톱9의 데뷔 무산 기사가 나오고 말았다. 결과에 실망한 모든 이들에게 한없이 죄송스럽고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고 했지만, 입장문에 따르면 YG가 ‘믹스나인’ 톱9이 허비한 시간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YG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수를 간절히 꿈꾸는 원석을 발굴하고, 더불어 이미 데뷔했으나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타 기획사의 신인들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도록 기획했다”며 “21년의 음반 제작 경험을 지닌 YG가 처음으로 타 기획사의 연습생들을 만나 그동안 쌓아온 시스템과 노하우, 글로벌 인프라 등을 총동원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스타 그룹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것이 최종의 목표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아쉽게도 프로그램은 예상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이어 “양 회장은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톱9으로 구성된 그룹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전략을 구상했고, YG를 포함해 기획사 6곳의 대표들을 직접 만났다”고 덧붙였다. 선심 쓰는 뉘앙스다. 그러나 합격자들의 데뷔는 YG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가 데뷔 조건은 아니었다.
(사진=JTBC)
프로그램의 성공은 제작진이 이끌어야 한다. 프로그램이 주목받지 못한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시청자의 책임은 아니다. 그렇다면 참가한 연습생들이 문제였을까? 제 아무리 인기 있는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라도 모든 작품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과 화제성은 작품의 재미에서 나온다. 그러나 ‘믹스나인’은 이미 ‘프로듀스101 시즌2’가 한바탕 휩쓸고 간 아이돌 서바이벌을 반복한 것부터 시청자의 흥미를 반감시켰다. 게다가 한동철 CP는 자신이 ‘프로듀스101’에서 사용했던 세트 연출이나 CG 효과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고정 시청자를 잡아야 할 방송 초반에는 연습생보다 양 회장의 모습을 더 많이 비췄다. “원석을 발굴하고, 신인들을 알리는 좋은 기회”는 물론,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요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바이벌 출신 아이돌의 장점은 프로그램의 인기가 그룹의 인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를 고려했을 때, 만일 ‘믹스나인’ 톱9이 데뷔한다면 단기간에 인기를 얻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다. YG도 “요즘 가요계에서 제아무리 실력이 훌륭한 그룹일지라도 등장과 함께 주목받기란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기획사 5곳 제작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며, 이에 “3년에 걸쳐 1년의 절반은 각자의 기획사에서 활동하고 나머지 절반은 ‘믹스나인’ 9명이 모여 함께 활동하는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약속된 4개월은 신곡 준비와 뮤직비디오 촬영, 안무 연습을 하기에도 벅차다는 생각과 더불어 단독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15곡 이상의 곡이 있어야 하는데 약속된 4개월 안에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내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4개월+해외공연’이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는 고민은 프로그램 기획 당시 했어야 할 일이었다.
YG에 따르면 기획사 대표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YG가 제안한 활동 기간이 부담스러워서다. 이에 YG는 기간을 다시 절반으로 줄여 1년에 3개월씩, 역시 3년 동안 활동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이 역시 모든 대표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YG는 이 과정을 설명하며 “매우 자연스럽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7차례 회의했으며,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단 한 번의 작은 불편함도 없었음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YG가 마치 모든 기획사 대표의 속마음을 읽은 듯 단언하는 모양새다.
YG는 이어 “결론적으로 YG는 어떠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 문장을 빼고 입장문 전부가 변명으로 보인다. “간추린 속사정이나마 알려드리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는데, YG가 진짜 지켜야 할 도리는 약속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아닐까.
일각에서는 ‘믹스나인’ 톱9이 ‘4개월+해외공연’의 조건으로 데뷔할 시 YG가 입을 손해를 걱정하기도 한다. 투자 대비 얻을 것이 없다는 이유다. 하지만 ‘믹스나인’의 데뷔가 무산되면서 YG 소속 연습생들을 제외하고 우진영·김효진·이루빈·김병관·송한겸·이동훈은 다시 각자의 소속사로 돌아가게 됐다. ‘믹스나인’ 출연으로 이미지는 소비됐는데, 데뷔는 또 기약이 없어졌다. 이미 이들이 입은 피해가 적지 않다. 아울러 ‘믹스나인’은 파이널 경연에서 실시간 문자 투표를 받았다. 건당 일정 금액을 내는 유료 투표였다. 문자 투표에 참여한 시청자들은 ‘믹스나인’ 톱9의 데뷔를 구매한 셈이다. 그러므로 YG의 ‘믹스나인’ 데뷔 무산 선언은 상품을 주문하고 돈을 낸 구매자에게, 판매자가 상품을 만들 수 없게 됐다며 환불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YG는 현재 한동철 CP를 비롯해 다수의 연출자를 영입하며 본격적인 제작사로 나선 상태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더욱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다. “YG는 ‘믹스나인’ 톱9뿐 아니라 참여한 모든 참가자의 미래와 번영을 진심으로 응원하겠다”는 말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분명히 책임지며 제작사로서, 또 국내 3대 연예기획사 중 한 곳으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