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뷰어스=노윤정 기자] JTBC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연출 곽정환)는 언뜻 박차오름(고아라)과 임바른(김명수)의 성장 이야기처럼 보인다. 실제로 극 중 박차오름과 임바른은 서로의 ‘다름’을 통해 배우고 판사로서 성숙해간다. 시청자들은 '나'처럼 서툰 두 사람의 성장에 공감을 보낸다. 하지만 민사 44부에서 변화를 겪는 이는 두 사람만이 아니다. 20년 넘게 법원을 지킨 부장판사 한세상(성동일)도 변하고 있다. (사진=JTBC 방송화면) ‘미스 함무라비’ 속 성동일이 분한 한세상은 소위 ‘꼰대’ 판사다. 남편,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면 ‘꼰대’라는 표현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한세상은 아내와 두 딸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법원에 있을 땐 가장 권위 있다는 판사지만, 집안에서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툭툭 던지는 한 마디에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담겨 있다. 회식 자리에서 “어른이 개떡 같이 얘기해도 아랫사람이 찰떡 같이 알아들으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 적절한 예시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극 초반 중요하게 다뤄진 성범죄, 성차별 문제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박차오름은 부임 첫 날,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성추행 당하고 있던 학생을 구한다. 선의였고,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한세상은 이 일로 법원이 시끄러워지자 박차오름과 피해자인 학생을 탓한다.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냐”고 말하더니, 이 말에 반기를 드는 박차오름에게 한 마디 덧붙인다. “여학생이면 여학생답게 조신하게 입고 다녀야한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여자로 만들어지는 거다”라고. 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두는 발언이다. 한세상은 오히려 남성인 가해자의 심정은 헤아리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해고당한 가해자를 이야기하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지 모르고 살아온 세대들이 있다. 이 사회가 변하는 걸 미처 따라잡지 못한 사람들. 우리 사회는 너무 빨리 발전했다”라고 두둔하듯 말한 것이다. 성폭력으로 고통 받은 피해자보다 ‘가장’인 가해자의 입장을 우선 생각한다. 전형적인 가부장 세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JTBC 방송화면) 하지만 한세상은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보인다. 박차오름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에 성폭력이 결국 권력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물리적 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간부와 인턴,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힘의 차이가 성폭력의 본질임을 알게 된다. 성희롱 문제가 자신의 딸들 이야기가 되자 더욱 피부로 체감한다. 마침내 가해자의 ‘밥줄’을 걱정하던 한세상이 판결을 내린다. “권력을 이용한 지속적인 성희롱은 사람의 자존감을 망가뜨립니다. 마음을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직장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을 절대로 피해자들과 같은 직장 내에 둘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해자의 고통과 피해자의 고통을 같은 저울도 잴 수가 없습니다. 가해자의 고통은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의 의무로 인해서 상쇄됩니다” (사진=JTBC 방송화면) 이렇게 ‘꼰대’의 모습을 벗고 나니 ‘어른’이 보인다. 배석판사 홍은지(차수연)가 부장판사 성공충(차순배)의 과중한 업무 지시로 유산까지 하는 일이 발생하자 박차오름과 임바른은 제대로 문제제기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당연히 부장판사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고, 한세상은 두 사람을 말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성공충이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찾아오자 “자네 배석한테는 가봤느냐”고 일침을 가한다. 후배들을 염려했기에 말렸지만, 막상 불의 앞에서는 분노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한세상은 박차오름이 성공충 문제로 전체판사회의를 소집하려하자 성공충과 이야기해 보았느냐고 묻는다. 이어 배석판사들의 이야기와 함께 부장판사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어야 한다고 깨달음을 준다. 그래야 전체판사회의가 편가르기 자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또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따끔한 조언 후 한세상은 직접 전체판사회의 자리에 참석해 박차오름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처럼 한세상은 아직 미숙한 후배들의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의욕 넘치고 열정적인 후배가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한세상의 말대로 너무 빠른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세대가 있다. 그래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 극 중 그런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한세상은 어른이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바탕에는 후배,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의 힘이 있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선배, 상사, 어른의 존재는 생각만으로 힘이 되고 든든하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남의 얘기 듣는 게 참 어렵네요”라는 한세상의 독백은 그래서 뭉클하다.

[수다뉴스] '미스 함무라비' 성동일이 보여주는 '꼰대'와 '어른'

노윤정 기자 승인 2018.06.12 10:38 | 최종 수정 2136.11.21 00:00 의견 0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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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어스=노윤정 기자] JTBC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연출 곽정환)는 언뜻 박차오름(고아라)과 임바른(김명수)의 성장 이야기처럼 보인다. 실제로 극 중 박차오름과 임바른은 서로의 ‘다름’을 통해 배우고 판사로서 성숙해간다. 시청자들은 '나'처럼 서툰 두 사람의 성장에 공감을 보낸다. 하지만 민사 44부에서 변화를 겪는 이는 두 사람만이 아니다. 20년 넘게 법원을 지킨 부장판사 한세상(성동일)도 변하고 있다.

(사진=JTBC 방송화면)
(사진=JTBC 방송화면)

‘미스 함무라비’ 속 성동일이 분한 한세상은 소위 ‘꼰대’ 판사다. 남편,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면 ‘꼰대’라는 표현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한세상은 아내와 두 딸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법원에 있을 땐 가장 권위 있다는 판사지만, 집안에서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툭툭 던지는 한 마디에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담겨 있다. 회식 자리에서 “어른이 개떡 같이 얘기해도 아랫사람이 찰떡 같이 알아들으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 적절한 예시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극 초반 중요하게 다뤄진 성범죄, 성차별 문제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박차오름은 부임 첫 날,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성추행 당하고 있던 학생을 구한다. 선의였고,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한세상은 이 일로 법원이 시끄러워지자 박차오름과 피해자인 학생을 탓한다.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냐”고 말하더니, 이 말에 반기를 드는 박차오름에게 한 마디 덧붙인다. “여학생이면 여학생답게 조신하게 입고 다녀야한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여자로 만들어지는 거다”라고. 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두는 발언이다.

한세상은 오히려 남성인 가해자의 심정은 헤아리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해고당한 가해자를 이야기하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지 모르고 살아온 세대들이 있다. 이 사회가 변하는 걸 미처 따라잡지 못한 사람들. 우리 사회는 너무 빨리 발전했다”라고 두둔하듯 말한 것이다. 성폭력으로 고통 받은 피해자보다 ‘가장’인 가해자의 입장을 우선 생각한다. 전형적인 가부장 세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JTBC 방송화면)
(사진=JTBC 방송화면)

하지만 한세상은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를 보인다. 박차오름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에 성폭력이 결국 권력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물리적 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간부와 인턴,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힘의 차이가 성폭력의 본질임을 알게 된다. 성희롱 문제가 자신의 딸들 이야기가 되자 더욱 피부로 체감한다. 마침내 가해자의 ‘밥줄’을 걱정하던 한세상이 판결을 내린다.

“권력을 이용한 지속적인 성희롱은 사람의 자존감을 망가뜨립니다. 마음을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직장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을 절대로 피해자들과 같은 직장 내에 둘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해자의 고통과 피해자의 고통을 같은 저울도 잴 수가 없습니다. 가해자의 고통은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의 의무로 인해서 상쇄됩니다”

(사진=JTBC 방송화면)
(사진=JTBC 방송화면)

이렇게 ‘꼰대’의 모습을 벗고 나니 ‘어른’이 보인다. 배석판사 홍은지(차수연)가 부장판사 성공충(차순배)의 과중한 업무 지시로 유산까지 하는 일이 발생하자 박차오름과 임바른은 제대로 문제제기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당연히 부장판사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고, 한세상은 두 사람을 말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성공충이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찾아오자 “자네 배석한테는 가봤느냐”고 일침을 가한다. 후배들을 염려했기에 말렸지만, 막상 불의 앞에서는 분노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한세상은 박차오름이 성공충 문제로 전체판사회의를 소집하려하자 성공충과 이야기해 보았느냐고 묻는다. 이어 배석판사들의 이야기와 함께 부장판사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어야 한다고 깨달음을 준다. 그래야 전체판사회의가 편가르기 자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또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따끔한 조언 후 한세상은 직접 전체판사회의 자리에 참석해 박차오름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처럼 한세상은 아직 미숙한 후배들의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의욕 넘치고 열정적인 후배가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한세상의 말대로 너무 빠른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세대가 있다. 그래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 극 중 그런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한세상은 어른이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바탕에는 후배, 아랫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의 힘이 있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선배, 상사, 어른의 존재는 생각만으로 힘이 되고 든든하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남의 얘기 듣는 게 참 어렵네요”라는 한세상의 독백은 그래서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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