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소희 기자] 존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발하는 것들이 있다. 여기에 갖은 바람을 이겨내고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폭발적인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가령 KBS1 ‘올댓뮤직’과 같은 경우다.
‘올댓뮤직’은 2010년 12월 춘천 지역방송으로 시작해 2012년 9월부터 KBS1을 통해 영역을 확장한 음악프로그램이다.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없던 언더신의 가수들이 주로 출연해 라이브 무대를 꾸민다.
대중에게 생소한 가수가 나온다는 건 그만큼 높은 시청률을 내기도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숫자로 생사가 좌지우지되는 방송계에서 ‘올댓뮤직’이 지난달 31일 300회를 맞은 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 배경에는 척박한 환경을 헤치고 열정 하나로 9년째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황국찬 PD가 있었다. 그 기간을 거친 MC 이한철, 이승열부터 현재 3대 MC인 육중완(장미여관)도 거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의 가치를 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더 많은 이들이 그 빛을 알아챌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똘똘 뭉친 ‘올댓뮤직’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올댓뮤직(사진=이동환 기자)
■ ‘올댓뮤직’이 300회를 맞기까지
“요즘 프로그램은 시즌제로 가거나 빨리 폐지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다른 프로그램도 아닌 ‘올댓뮤직’이 300회까지 온 게 대단해요. 많은 분들이 잘 버텨주지 않았나 싶어요(육중완)”
“지나고 나니 ‘9년’이라는 시간이 보인 거지, 처음부터 ‘장수 프로그램을 만들자’ 같은 생각은 없었어요. 스태프진도 그렇고 제작비도 그렇고, 여건이 별로 좋지 않았거든요. 또 춘천은 인구도 적은데다가 연령층이 높은 편이에요. 여기에 ‘주류’라고 불리는 음악들을 다루는 게 아니다보니 매번 객석이 채워지는지가 걱정이었죠. 정말 하루살이처럼 한 회, 한 회 찍고 ‘다음 공연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왔어요. 기념일 특집도 염두에 두지 못했던 이유도 당장 프로그램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준비할 수가 없었던 거죠(황국찬 PD)”
황 PD에게 가장 위기였던 순간을 묻자 “프로그램 생긴 후 4년간 매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방송사에서는 강원도에서 방송하면서, 그것도 상업적인 방송이 아닌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제작비를 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로 인해 ‘올댓뮤직’은 매 개편 때마다 불안을 겪어야 했다. 이후 프로그램이 전국방송으로 확대되자 그때부터 FD가 생기고 작가도 늘어났다. 꾸준히 한 우물을 판 황 PD의 소신이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는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끔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차피 공영방송에서 하는 거니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방송할 거야’ 같은 마인드는 아니에요. 음악을 대중에 알리는 프로그램이니 더더욱요. 이렇게까지 ‘올댓뮤직’이 올 수 있었던 데는 시청자 분들, 관객 분들의 힘이 컸죠. 프로그램에 필요한 건 비주류 음악에 대한 관심이었으니까요(황국찬 PD)”
육중완(사진=이동환 기자)
■ 3대 MC 육중완으로 본 ‘올댓뮤직’의 정성
황국찬 PD는 이 포인트 때문에 육중완을 3대 MC로 섭외했다고 했다. 생소한 언더신의 매력을 대중에 알려야 하기 때문에 전달자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다.
“육중완의 섭외는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사회자를 결코 쉽게 고르지 않았거든요. 고민한 시간만 1년이에요. 우리가 다루는 비주류 음악이 대중에게 낯설다 뿐이지 대중성이 없는 음악은 아니거든요. 그런 음악을 소개하는 사람이 필요했기에 편안한 느낌을 주는 MC가 필요했어요. 너무 진중하거나 무거워도 안 됐던 거죠(황국찬 PD)”
“첫 방송 때 고민했던 게, 내 스타일대로 하려면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발랄하게 ‘안녕~’해야 하는데 그러면 프로그램이 너무 가벼워질 것 같은 거예요. 원래 성격처럼 해야 하나, 아니면 콘셉트를 잡아야 하나 싶었죠(육중완)”
“오히려 그게 육중완의 강점이에요. 예전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매체가 많이 없다 보니 공을 들여서 음악을 찾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유튜브나 음악 사이트 등 너무 많은 매체가 있다 보니 음악을 찾는데 별다른 힘이 안 드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신만의 곡에 애착이 덜 생기고 덜 집중하게 되고. 나는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든 생각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가수를 설명하고 음악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거였어요(황국찬 PD)”
‘올댓뮤직’이 단순히 가수를 소개하고 음악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황 PD는 음악이 대중에게 보다 깊게 스며들기를 원했고, 프로그램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또 정성껏 음악을 전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황국찬 PD(사진=이동환 기자)
■ 그 중심에는 ‘음악’이 있었기에
황 PD와 함께 300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육중완은 사실 실질적으로 방송에 출연한 횟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에 육중완은 다른 이들이 일궈놓은 곳에 본인이 타이밍 좋게 들어와 있다며 여러 번 멋쩍어했다. 하지만 기간은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언더신을 바라보고 그 안에 속해 있는 입장으로서 진지한 고찰을 내뱉는 육중완의 눈은 분명 빛났다. 음악과 동료들에 대한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화가 오갔다.
“MC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뮤지션 입장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도 걱정됐지만, 언젠가 이 가수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올 텐데 그런 상황들이 불편할 것 같았어요. 박수쳐줘야 할 때도 있지만 쓴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잖아요. 이 친구들의 꿈과 갈증은 잘 아는데, 그렇다고 또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가 그 가수에게 인생의 낭비를 주게 되면 어떡해요. ‘올댓뮤직’의 MC 자리는 중요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자리에요(육중완)”
그런 그가 마음을 돌린 계기는 오로지 ‘음악’이었다. 언더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상황 속에서 ‘올댓뮤직’의 진행을 맡는다는 건 곧 밴드신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일과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육중완은 출연하는 팀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갈 수 있도록 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다.
“‘올댓뮤직’에는 정말 날 것의 뮤지션들도 많이 출연해요. 방송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팀들도 많죠. 다들 긴장도 엄청 하고, 어디까지 말을 하고 단어를 사용할지 짐작을 못 하더라고요. 말을 한다 해도 ‘이 부분 편집되는 거 아닐까?’ 생각에 잘 하지도 못 하고요. 얼어붙어 있다 보니 자기 걸 다 못 보여주고 가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인터뷰도 20분 정도로 짧은 편이라 입이 풀릴 만하면 끝이 나고요. 그래서 오히려 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건네요. 그러니 출연 팀들도 편안하게 마음을 갖고 왔으면 좋겠어요. 힘을 빼야 더 재미있고 친근하니까요(육중완)”
육중완은 황 PD의 말대로 단순히 대본을 읽는 정도의 진행을 하지 않는다. 신인 뮤지션들이 어렵게 잡은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까지 한다. 같은 뮤지션의 입장이기에, 어렵고 힘든 언더 신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겪어온 입장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주보기] ①‘올댓뮤직’, 정성과 진심으로 달려온 9년
[마주보기] ②‘올댓뮤직’의 가치, 오래 존재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