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
[뷰어스=노윤정 기자] tvN ‘꽃보다 할배’의 네 번째 시리즈, ‘꽃보다 할배 리턴즈’가 성공적인 귀환을 알렸다. 2015년 방영한 그리스 편 이후 3년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연출을 맡은 나영석 PD는 첫 방송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사람들이 잊지 않았을지 고민’했다고 밝혔지만 기우였다.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방증하듯 6월 29일 방송된 1회에서 9.2%(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여행’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신선함을 주지 못한다. 이미 너무 익숙해진 포맷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통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tvN 방송화면)
■ '할배'들의 여행에서 배우는 '인생'
원년 멤버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새 멤버 김용건이 동유럽으로 함께 떠난다. 여기에 특별함은 없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타지에 가서 여행을 할 뿐이다. 그런데도 '할배'들의 여행은 새롭진 않아도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준다. 이에 대해 나영석 PD는 “시청자분들이 그분들을 보면서 단순한 여행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것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가능하면 기존 멤버들을 고수해서 모시고 가는 이유는 그분들의 여행하는 모습을 통해서 시청자분들이 감동을 받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서다”고 설명했다.
여행 당일 멤버들의 모습을 보자. 백일섭은 “며칠 잠을 설쳤다. 이번엔 괜히 설레더라”며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공항에 미리 도착한 멤버들은 다음에 올 멤버가 누구일지 추측하고, 함께 셀카(셀프카메라)를 찍으며 여행의 설렘을 만끽한다. 첫 여행지인 베를린에 도착해서는 낯선 풍경을 둘러보며 눈을 떼지 못한다. 박근형은 “유럽 쪽을 다 돌아보게 됐다”며 감탄한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는 여행이 주는 일탈감과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느끼는 낭만을 담는다는 점에선 여느 여행 프로그램과 다를 것 없다. 하지만 여행을 떠난 이들이 평균 나이 78.8세인 고령의 ‘할배’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꽃보다 할배 리턴즈’는 특별해진다.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을 멤버들이 눈을 반짝이며 여행을 즐기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감동적이다.
또한 ‘할배’들이 체력 좋은 젊은 사람들처럼 빠르고 역동적인 여행을 즐기기는 어렵다. 젊은 사람들만 해도 함께 여행을 가면 누군가는 앞서고 누군가는 뒤쳐진다. 고령의 여행객들이라면 그 차이가 더 심할 터. 더욱이 백일섭은 허리와 무릎을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다른 멤버들과 같은 속도로 걷는 것은 무리다. 실제로 여행을 시작하자 걷는 속도 면에서 다른 멤버들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러나 예전처럼 조급해하지 않았다. 백일섭은 앞서 가는 멤버들을 보며 “곧 서울 갈 사람들 같다. 뭐 저렇게 빨리 가느냐. 천천히 찾아가면 된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가면 된다”며 웃었다. 이서진 역시 “예전에는 백일섭 선생님이 처질 때면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나이가 들면 잘 걷는 사람도 있고 잘 못 걷는 사람이 생기는 거다. 처진다고 해서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백일섭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자신의 속도에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용건은 백일섭의 옆을 지키며 그가 늦어지는 데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뒤처져도, 조금 느리게 와도 괜찮다. 무수한 세월의 풍파를 겪은 원로 배우들이 전달하는 이 메시지는 그저 여행에서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를 사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남들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말하는 위로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여행기 속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멤버들의 인생 철학을 담는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다.
(사진=tvN 방송화면)
■ '꽃보다 할배', '어른'을 보여주다
'꽃보다 할배' 첫 번째 시리즈에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 하나 있다. 홀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온 젊은이를 보며 신구가 “존경한다”고 말하는 장면.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70대(당시 78세) 원로 배우가 20대 젊은이에게 존경을 표하는 장면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에서도 마찬가지다. 멤버들은 베를린 숙소에 도착한 뒤 직접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숙소 계단을 올라간다. 누구도 먼저 ‘짐꾼’ 이서진에게 자신의 짐을 들어주길 바라지 않는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먼저 식사를 시작하지 않고 반찬을 준비 중인 이서진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이런 사소한 행동등 하나하나에서 어른의 당당함과 여유를 본다. 시청자들은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통해 보는 것은 바로 ‘어른’의 모습이다.
‘막내’ 김용건의 합류로 이 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김용건은 새로운 ‘할배’로 여행을 함께 하게 됐다. '꽃보다 할배' 안에는 ‘짐꾼’ 역할을 부여받은 이서진이 있다. 하지만 김용건은 기꺼이 막내 역할을 자청하며 이서진의 짐을 덜었다. 김용건은 여행 전날 “막내로서 부지런해야 하는데 체력이 많이 고갈된 것 같아서 걷고 있다”며 체력을 단련했다. 여행 가방을 싸면서는 다른 멤버들을 위한 약을 살뜰히 챙겼다. 여행 당일에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공항에 도착해 다른 멤버들을 맞았다. 이후 멤버들과 스태프들을 위해 직접 커피를 사서 날랐다. “이서진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 눈치는 좀 있다”며 능청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농담 같은 김용건의 말은 그저 말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김용건은 낯선 여행지에서 멤버들이 길을 잃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이서진과 다른 멤버들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차에 오르내릴 때 다른 멤버들의 짐을 대신 옮겨주기도 한다. 이서진의 부탁으로 백일섭의 곁을 지킨 것도 김용건이다. 김용건 역시 70대다. 힘에 부칠 법도 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용건은 “서진이한테 내가 도움이 돼야 한다.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고 말하며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할배’들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꽃보다 할배’는 ‘할배’들이 지난 세월 속에서 쌓아온 경륜을 그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조명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하지만 정작 ‘할배’들은 어른이라는 이유로 무게를 잡거나 대접 받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 때는~’이라는 말로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배우려 한다. 이번에도 이순재는 여행을 앞두고 독한사전을 찾아 읽지 않던가. 그가 베를린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소위 ‘꼰대’처럼 느껴지지 않고 순수한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어쩔 수 없이 세대차이가 느껴질지언정 불편하지 않다.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할배'들의 여행기를 기꺼이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