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소희 기자] 많은 이들이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는다. 혼란스러운 앞날에 보탬이 될 만한 채찍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자기계발서를 선호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 까닭 중 하나는 대부분이 앞으로 나아가는 법만 알려주지, 변화를 맞이한 자신과 주변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별로 없어서다.
그런 면에서 가수 디어는 자기만의 자기계발서를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시간이 흘러 혹은 주변에 의해 변해가는 자신을 스스로 먼저 받아들이려고 했다. 자기 자신이 무엇에 강하고 약한지,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알고자하는 것이다. 그렇게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자 앞으로의 또렷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변화가 시련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자 또 다른 계단을 올라갈 수 있는 힘이 된 셈이다.
(사진=코너스톤 제공)
■ 디어를 바꾸어놓은 변화들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목소리가 앨범의 색깔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색깔은 유지하면서 그 선 안에서 다른 표현법을 쓰고 싶었던 거죠. 스타일은 유지하지만 평소 해보지 않았던 걸 해보는 거예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디어는 지난 5월부터 싱글 ‘그래비티(Gravity)’와 ‘레인 이즈 폴링(Rain is fallin’)’을 발표했다. 그간 여러 협업과 곡 작업은 해왔지만 온전히 디어의 이름으로 신곡을 내는 건 2015년 2월 이후 약 3년 5개월 만이다. 오랜만에 나온 곡은 그간 디어의 노래와 사뭇 다르다. 부드럽고 풍성한 분위기는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결이 다른 특징들을 집어넣었다.
“‘그래비티’는 중력처럼 이끌릴 수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섹시하게 표현한 곡이에요. 예전 곡들이 섬세하고 선율이 아름다운 느낌이었다면, ‘그래비티’에서는 리듬감 있고 트렌디한 인상을 주고 싶었죠.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 이 곡이 지금까지 녹음 중 가장 오래 걸리기도 했어요. 그루브보다 선율을 중요시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보컬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지만 내 색깔과 변화를 위해서 꼭 불러야 하는 노래라고 생각했어요”
디어는 ‘그래비티’를 두고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노래이지만 지금까지의 것과는 다른 이 노래를 그는 받아들였다. 디어가 오랜만에 대중 앞에 나서면서 다소 실험적인 ‘그래비티’를 올해 첫 곡으로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멜로디와 편곡으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의 구상을 잡고 가사로 그 이야기를 구체화해요. 멜로디만 가이드 해놓은 곡 목록과 가사노트에 일기처럼 써둔 가사들이 따로 있거든요. 곡을 쓸 때는 이 목록 중 지금 내가 끌리는 것들을 꺼내 마음이 가는 대로 조합을 해봐요. 잔잔한 노래를 해왔다고 해도 지금 내가 빠른 노래를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거예요. 올해는 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곡(‘그래비티’)을 낸 거고요”
(사진=코너스톤 제공)
그러면서도 디어는 대중을 염두에 두고 변화의 완급조절을 하려고 노력했다. 디어는 “갑자기 EDM 장르를 할 수는 없지 않냐”면서 웃었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한 곡으로 자신을 처음 알게 된 대중일지라도 예전 곡을 들었을 때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폭을 넓히고자 한다.
“‘레인 이즈 폴링’은 비오는 날 카페에 앉아 옛날 생각을 떠올리는 내용이에요. 우리가 만나왔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지금도 네가 옆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이 노래는 편하게 녹음하려고 했어요. 바이브레이션도 많이 없고 멜로디도 클래식하고 빈티지한 느낌을 줘 ‘그래비티’와 확실하게 구분을 짓고 싶었죠”
‘레인 이즈 폴링’은 지난해 쯤 장마 시기쯤 곡을 내야겠다고 모티브를 잡아둔 곡이다. 그것만으로도 디어에게는 큰 변화다. 겨울과 어울리는 따뜻한 목소리를 지닌 덕택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매번 추운 날씨에만 노래를 내왔기 때문이다. 디어의 달라진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편의 영화 포스터 같은 앨범 커버에서도 그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듣는 음악에만 집중하고 앨범을 구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커버에서 주는 느낌이나 그 사람의 인상 등이 음악과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만해도 가수를 떠올릴 때 앨범 커버가 떠오르는 가수들이 있거든요. 예전에는 회사가 커버 작업을 해줬다면 이제는 곡의 이미지를 더 짙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해요. 이번에도 직접 작가님의 SNS를 찾아서 연락을 드렸어요. ‘그래비티’는 우주라는 바다에 빠지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어서 이미지를 잘라 붙여 시안을 제시했고, ‘레인 이즈 폴링’은 영화 ‘라라랜드’ 같은 분위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소통한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어요”
'그래비티' '레인 이즈 폴링' 커버
■ 바뀌어가는 자신, 곧 스스로의 근원
이렇게까지 디어가 변화를 드러내려는 이유는 사실 ‘강박’에서 기인한 것도 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본연의 색깔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새롭게 다가가고 싶다고 해서 없는 구석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건 아니다. 자신이 지닌 여러 색깔 중 하나만 펼쳐왔던 예전과 달리, 더 많은 것들을 내보일 용기를 이제는 낼 수 있게 됐다.
“아까 겨울과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여름과 어울리는 곡도 많이 작업해놨어요. 그때는 한쪽 면만 보여준 거죠. 앞으로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려고 해요. 가지고 있던 걸 버리는 게 아니라 다른 걸 꺼내야 대중 앞에 나서는 가수로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중에게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노래 하나하나의 변화는 큰 물줄기를 바꾸기도 한다. 지금까지 공연을 하지 않았던 디어는 이번 변화를 토대로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낸 곡들로 세트리스트를 구성한다면 노래가 다 비슷한 템포이기 때문에 좀 처지는 경향이 있었을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공연을 안 하게 됐어요. 또 녹음할 때도 한 곡당 3일에서 일주일 정도 걸리는 편인데, 그걸 라이브로 부르려고 하니... 그때만큼의 최선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고요. 가수보다 프로듀서가 더 체질에 맞나 생각도 했어요.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알리고 싶은 마음의 크기도 계속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계속 생각이 바뀌죠. 하지만 이제는 방안에만 있었던 나날들을 깨고 사람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사진=코너스톤 제공)
어느덧 데뷔한지 7년차가 된 디어. 20대를 지나 이제 30대가 된지도 시간이 꽤 됐다. 그만큼 그의 삶에 찾아온 변화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디어는 이 시간들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오히려 자꾸만 변하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냈다. 그러자 이제는 자신의 깊숙한 면까지 꺼내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지금까지 좀 게을렀던 것 같아요. 음악보다 사랑과 삶에 더 집중을 했죠. 20대에는 열정적으로 사랑을 했기에 그때 하고 싶은 말이 사랑뿐이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삶이 달라지면서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다음 앨범에는 나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어요. 불안감이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등 질풍노도를 거친 내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요. 내면의 소리를 음악으로 풀어내는데 집중하려고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디어의 색깔을 형성하는 근원이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 의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변화의 중심에는 디어의 또렷한 소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마음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선명하다.
“분명한 것은 단순히 바뀌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각 앨범마다 변화의 포인트가 달랐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지금 느낀 감정을 그때그때 곡으로 풀어내야 하는 것 같고요. 그게 바로 ‘현재의 나’이니까요. 앞으로 공연도 많이 하고 음원도 내고 부지런해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