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뷰어스=손예지 기자] 배우 신혜선은 올해 서른이 됐다. 그가 지상파 미니시리즈 첫 주연으로 나선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극본 조성희, 연출 조수원)에서 맡은 캐릭터 우서리도 서른살이다. 그러나 동시에 서리는 신혜선이 여태 맡아온 인물 중 가장 어린 소녀다.
서리가 처한 상황 때문에 발생한 아이러니다. 드라마 제목인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그대로다. 극 중 바이올린 유망주였던 서리는 독일 유학을 앞둔 열일곱에 버스 전복사고를 당해 코마 상태에 빠졌다. 기적적으로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이미 13년이나 흘러 있었다. 서리와 세상의 시간이 어긋난 배경이다.
‘서른이지만 열일곱’으로 사는 삶은 힘들었다. 서리는 바이올린 강사 면접을 보러 간 음악학원에서 “이력이 기준 미달”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런가 하면 집주인 공우진(양세종)은 자신과 동갑내기인 서리의 천진난만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친근하게 구는 서리를 종일 무시하다가 결국 “애냐. 보통 그 나이면 눈치채지 않냐. 어른이 그 정도도 파악이 안 되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드라마는 서리를 통해 세상이 ‘어른’에게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서른살이 될 때까지 이력서에 적을 만한 스펙 한 줄 만들지 못한 사람은 사회의 기준에 뒤떨어진다거나, 순수하고 해맑은 성격이 ‘애 같은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속에서 서리는 뒤늦게 성장통을 겪는다. 지난 16회에서 서리는 우진에게 “난 내 나이가 너무 낯설고 너무 어렵다. 분명히 어른 맞는데 나만 혼자 아직 어른 못 된 것 같아서”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내 인생의 인터미션(공연 중간에 쉬는 시간)”이라고 했다. “멋진 다음 무대 기다리면서 잠깐 멈춰있는 시간”이라는 것. 그렇기에 주위에 기대거나 도움을 바라지 않고 자립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다.
(사진=SBS)
시청자들이 서리에게 깊이 공감하고 응원을 보내는 데는 신혜선의 공이 크다. 몸과 마음, 나와 세상의 괴리에서 비롯된 혼란스러움을 이겨내고 천천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하기란 분명 쉽지 않을 터다. 그러나 신혜선이 해내고 있다. 요즘 TV 속 신혜선은 서리, 그 자체가 된 듯 보인다. 단순히 어려보이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다. 열일곱의 천진난만함과 조금씩 성숙되어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받는다.
어린 나이부터 확실한 꿈을 가졌으나 출발이 다소 늦었다는 점에서 서리와 신혜선은 닮았다. 신혜선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데뷔했다. 연예계에서는 적잖은 나이에 첫 발을 뗀 것이다. 처음 배우를 꿈꾼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중학생 때부터 연기 학원에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아예 연기를 전공했다. 그러나 배움과 실전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신혜선은 학교를 마친 뒤 한참을 헤맸다. 배우가 되는 방법을 몰라서였다. 서리가 다짐한 것처럼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나아가고자 했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돌고 돌아 데뷔 5년 만에 처음 지상파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맡게 된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속 서리는 신혜선에게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다. 그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분명히 느껴진다. 지난해 신혜선을 주연급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KBS2 ‘황금빛 내 인생’은 대표적인 예다. 신혜선은 극 중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철이 들은 캔디형 주인공 서지안을 통해 의젓한 장녀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보다 앞서 출연한 JTBC ‘비밀의 숲’에서는 자존심 센 엘리트 검사 영은수를, SBS ‘푸른 바다의 전설’(2016)에서는 논리정연하고 똑똑한 보존 과학자 차시아를 각각 맡아 ‘어른’의 전형을 보여줬었다.
그렇기에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속 신혜선의 열연이 더욱 감탄스럽다. 틀을 깨고 자신이 가진 또 다른, 어쩌면 신혜선 내면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가 방송 16회 만에 시청률 10%대를 돌파(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그간 지지부진했던 SBS 드라마의 흑역사를 깨끗이 씻어낸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