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른도감' 스틸컷 (사진=영화사 진진)
[뷰어스=김동민 기자] ‘어른’은 일종의 추상명사다. 흔한 얘기로 스무 살이 넘었다거나 결혼을 했다고, 또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어른은 아니다. 성숙함으로 대변되는 어른의 단계는 현실적 지위라기보단 평범한 이들이 목표로 하는 이상향에 가깝다. 누구나 살면서 성인(成人)이 되지만 아무나 성인(聖人)이 되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와 지위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어쩌면 넘어지고 다치고 때론 비겁해지면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어른’이란 별을 등대삼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영화 ‘어른도감’의 두 주인공은 각자 다른 경로와 속도로 어른을 향해 나아간다. 자신을 버린 엄마와 이제 막 세상을 떠난 아빠로 인해 홀로 남은 열네 살 소녀 경언(이재인), 그리고 이런 경언 앞에 나타난 생면부지의 삼촌 재민(엄태구) 얘기다. 경언을 보살핀다는 명목으로 그와 함께 살게 된 재민이 조카에게 주어질 보험금 8000만원을 탕진하면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동업’이 큰 줄기. 유부녀를 만나 돈을 얻어내는 사기꾼 재민이 돈을 갚겠다며 ‘한탕’을 위해 약사 점희(서정연)에게 접근하고, 여기에 경언을 딸로 속여 점희의 환심을 사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영화 '어른도감' 스틸컷 (사진=영화사 진진)
버디무비로서 ‘어른도감’이 보여주는 경언과 재민의 호흡은 발칙하고도 유쾌하다. 작은 키와 단발머리의 경언은 씩씩하면서도 여린 내면을 가진 중학교 1학년 소녀로, 훤칠한 외모를 갖고도 사기나 일삼는 재민은 철없는 삼촌으로서 서로 특별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동상이몽을 꾸는 두 사람이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신경전을 벌이는 영화 초반부는 작위적이지 않은 코믹 요소로 웃음을 자아내고, 이들이 갈등 속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전개 역시 차분하면서도 진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주연 배우들의 연기다. 엄태구와 이재인, 서정연까지 세 배우의 캐릭터 연기는 몸에 딱 맞는 옷처럼 흠 잡을 데가 없다. 특히 ‘밀정’과 ‘택시운전사’ 등을 통해 냉혈한 이미지가 익숙한 엄태구와는 정반대인 ‘어른도감’ 속 연기는 그 괴리감에 탄성이 나올 정도다. 특유의 섬뜩한(?) 저음으로 시덥잖은 개그를 선보이는 엄태구는 배우의 변신이 얼마나 신선할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반응하는 이재인의 당찬 대사와 연기 역시 주인공이자 관찰자로서 영화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고, 서정연 또한 비교적 적은 비중에도 자신만의 입지를 확실히 구축하며 서사에 깊숙이 녹아든다.
영화 '어른도감' 스틸컷 (사진=영화사 진진)
‘어른도감’이 정성들여 담아낸 세 인물의 내면 역시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과거 부모와의 불화로 가족을 떠났던 재민과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재인,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었던 점희까지. 플래시백(회상 장면) 없이 당사자의 회고로 전해지는 이들의 전사(前史)는 담담한 고백을 통해 더욱 아릿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주인공 각자가 지닌 상처와 문제점들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이면의 ‘어른스러움’을 조명하는 데에도 성공한다. 바로 외톨이로 지내 온 이들이 서로 마음을 터놓으면서 엿보이는 진정한 소통과 교감을 통해서다. 거짓과 진심 사이, 동지와 적을 넘나드는 관계 속에서 타인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던 이들은 어느 순간 상대방을 위로하고, 또 상대방에게 위로받는다. 말하자면 ‘어른도감’이 방점을 찍는 건 어른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순수한 교감의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건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삶의 일부를 주는 것”이라는 재인의 대사처럼, 우리는 돌려받지 못할 삶을 타인에게 선사하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