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사진=티캐스트)
[뷰어스=김동민 기자] 가족만큼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사회도 없다. 부부는 철저한 분업과 협업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취하고, 어린 자녀들은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단순히 경제적 지원이나 육아, 부양 따위의 생활 서비스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사랑’이란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가족 간의 희생과 헌신은 이를테면 불확실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투자 같은 것이다. 가족이 끈끈한 유대로 이어져 있는 한편 더할 나위 없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회인 건 그래서다.
영화 ‘어느 가족’은 이러한 가족의 이중적 면모를 의미심장하게 드러낸다. 줄곧 가족을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삼아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작품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한 가족의 내부를 가만히 응시한다. 주인공은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오래되고 좁은 집에 사는 어느 가족. 80은 족히 돼 보이는 할머니부터 열 살이 채 안 된 소녀까지 여섯 식구다. 공식적으로 독거노인 혼자 사는 것으로 되어 있는 이 집 식구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이 특별한 가족이 실은 진짜 가족이 아니고, 더 정확하게는 ‘혈연’이나 ‘호적’ 따위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다.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사진=티캐스트)
아닌 게 아니라 집주인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 이하 가족들은 모두 서로 생판 남과 다를 바 없다. 중년 남성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그의 연인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았고, 이들의 조카뻘 쯤 되는 20대 아가씨 아키(마츠오카 마유)는 무슨 사정인지 부모를 떠나 유사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며 하츠에 곁을 지킨다. 오사무가 어딘가에서 데려왔다는 아들 뻘 소년 쇼타(죠 카이리)는 가게에서 몰래 물건을 훔쳐 집안 살림에 보태며 살아간다.
‘어느 가족’의 서사는 이들 가족 사이에 새로운 구성원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오사무와 쇼타가 한 아파트 복도에서 쭈그려 앉아 있던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를 발견하고, 부모로부터 방치된 그를 거둬 함께 살게 되면서다. 영화는 유리가 이들 가족 사이에 점점 녹아드는 과정을 그림과 더불어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사연을 정성들여 조명한다. 이 와중에 유리의 존재가 외부에 드러나면서 이들의 동거는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시종일관 가볍지 않게 그려지면서도 따스하고 잔잔하게 다뤄진다.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사진=티캐스트)
영화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오사무 일행을 대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영화 초중반부, 밑바닥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가는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이상적인 파트너로 여겨진다. 없는 살림에도 컵라면과 고로케를 나눠 먹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그들은 퍽 행복해 보이고, 두 아이는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애정을 오사무와 노부요에게서 확인한다. 그렇게 동병상련의 여섯 주인공을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세계로 그리던 영화는, ‘외부로의 노출’ 또는 ‘외부에서의 침투’를 통해 돌연 아릿한 현실을 조명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느 가족’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 가족 내부와 외부 사이 틈새 어딘가에 있다. 사회가 규정하는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을 통해 더없이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고, 그러면서도 그 완벽한 가족의 불완전성을 뼈아프게 조명하기에 이른다. 영화 후반부 “낳았다고 해서 다 부모인가”라는 질문과 “낳지 않았다면 엄마가 될 수 없다”라는 답은 가족의 의미에 대한 모순적인 현주소로 읽히는 것도 그래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아파트 복도에서 난간 밖을 바라보는 영화 말미 유리의 얼굴 역시 같은 맥락에서 긴 울림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