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net)
[뷰어스=손예지 기자] 시작은 요란했으나 끝은 미약한 모양새다. 31일 종영하는 Mnet ‘프로듀스48’ 얘기다.
‘프로듀스48’은 국내 음악 채널 Mnet과 일본 유명 음악 프로듀서 야키모토 야스시가 손 잡고 만든 한일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다. 여기서부터 시청자들의 반감은 상당했다. 우리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일본과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놓였다. 때문에 대중적으로 뿌리깊게 박힌 ‘반일 감정’이 들썩였다. 이는 국내에 일본 문화를 즐기는 마니아층이 뚜렷한 것과는 또다른 문제였다.
더욱이 AKB48은 ‘우익 걸그룹’으로도 알려진 상태였다. AKB48의 현지 콘서트에 소품으로 사용된 욱일기와 탱크, 야스쿠니 신사 공연 등이 증거로 제시됐다. 그뿐인가. 일부 멤버가 전범 기업 광고를 촬영하거나 자위대 홍보 잡지 모델로 활동한 사실도 여론을 불편케 했다. 방송 시작 전부터 ‘우익 논란’에 휩싸인 배경이다. 이에 Mnet이 “AKB48은 정치색과 무관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눈가리고 아웅으로 비춰졌다.
결국 시청률에서도, 내용적으로도 참패였다. ‘프로듀스48’ 전신인 ‘프로듀스101’ 시리즈와 정반대 결과다.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아니라 시청자가 선택한 연습생이 데뷔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국민 프로듀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를 통해 시즌1에서는 걸그룹 아이오아이(I.O.I), 시즌2에서는 보이그룹 워너원(WannaOne)이 탄생했다. 두 그룹 모두 ‘괴물신인’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가요계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큰 인기를 누렸다.
(사진=YMC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Mnet은 대체 왜 잘 나가던 ‘프로듀스101’ 시리즈에 일본과의 컬래버레이션을 끼얹었을까. 김용범 Mnet 국장은 제작발표회 당시 “우리나라 음악 산업이 세계를 바라보는 위치에 놓인 가운데, 우리(Mnet)가 박차를 가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세계 음악 시장 규모 2위에 해당하는 일본과 손잡고 글로벌 활동을 펼칠 걸그룹을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그리하여 제작진이 정의한 ‘프로듀스48’의 정체성은 다음과 같다. “‘국민이 직접 아이돌 데뷔 멤버를 선발’하는 한국 프로듀스 101 시스템과 일본 최고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콘셉트로 전용 극장에서 상시 라이브 공연을 하는 일본 AKB48 시스템이 결합된 프로젝트 프로그램”
종영을 앞둔 시점에서 ‘프로듀스48’이 제작진의 예고대로 서로 다른 시스템의 시너지가 충분히 발휘했는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프로듀스48’은 ‘프로듀스101’ 시리즈가 했던 것처럼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미션을 주고 경쟁을 시켰다. 현지에서 극장 공연형 아이돌을 표방하고 있는 AKB48의 특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파이널을 앞두고서야 지난 26일 AKB48의 52번째 싱글 ‘티처 티처(Teacher Teacher)’ 발매 기념 대악수회 현장에 ‘프로듀스48’ 생존자 20명을 보낸 게 전부다.
컬래버레이션의 첫 번째 의의는 실패로 돌아간 셈. 그렇다면 ‘프로듀스48’이 한일 합작으로 기획된 또다른 목표를 이뤘을까. 김용범 국장은 ‘뮤직 메이크스 원(Music Makes One)’이라는 채널 슬로건에 맞춰 음악으로 하나되는 아시아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던 바다. 특히 그는 ‘프로듀스48’이 “정치와 이념을 넘어선 대화의 창구”이자 “한일 양국이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했다.
김 국장의 원대한 꿈은 허울 좋은 포장에 그쳤다. ‘프로듀스48’로 오히려 한일 양국 갈등의 골만 깊어진 듯했다. ‘프로듀스48’은 한국 연습생 팬들과 AKB48 기존 팬들의 대립이 ‘반일’과 ‘혐한’ 감정으로 번지면서 더욱 격화됐다. 특히 AKB48 팬들은 한국 참가자 일부가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배지를 착용한 데 대해 ‘애국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비난했다. 한국 연습생 팬들 역시 AKB48 멤버들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사진=Mnet)
서바이벌 특성상 참가자 팬들은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프로듀스48’이 “정치와 이념을 넘어선 대화의 창구”이자 “한일 양국이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프로듀스48’ 촬영 동안 AKB48 멤버들은 자국 스케줄도 병행해야 했다. ‘프로듀스48’은 모든 미션을 팀별로 진행했는데 AKB48 멤버가 포함된 팀은 경연 준비에 피해를 입었다. 더구나 아티스트와 아이돌의 영역이 철저히 구분된 J-POP 시장에서 활동한 AKB48는 기본기 자체가 부족한 멤버들이 많았다. 결국 한국 연습생이 자신의 몫을 소화함은 물론, AKB48 멤버들까지 돕는 일이 반복됐다. 제작진은 이를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아름다운 우정’쯤으로 연출했으나 ‘프로듀스48’이 우정 쌓기 프로그램이 아니라 경연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 조건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도 ‘프로듀스48’은 11주 연속 TV화제성 비드라마 부문 1위, 9주 연속 콘텐츠영향력지수(CPI)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정작 시청률은 2%대에 머물렀다.(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기준, 이하 동일) ‘프로듀스101’ 시즌1과 시즌2가 각각 최고 시청률 4.4%, 5.2%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 난 수준이다. 화제성 차트와 시청률 성적의 괴리는 ‘프로듀스48’이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TV화제성을 조사하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과 CPI를 개발한 닐슨코리아·CJ E&M은 온라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순위를 매긴다. 다시 말하면 ‘프로듀스48’에 대한 언급이 SNS와 커뮤니티 등 온라인에서만 이뤄졌다는 뜻이다. 특히 ‘프로듀스101’ 시즌1과 시즌2가 주제곡 ‘픽미(Pick Me)’ ‘나야 나’는 물론, 참가자들 유행어까지 여러 예능에서 패러디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것과 비교하면 ‘프로듀스48’는 화제성이 높다고 말하기 민망한 지경이다.
물론 참가자들은 죄가 없다. 역대 시즌 중 가장 많은 논란과 저조한 성적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경연의 압박감까지 견디며 촬영에 임했을 참가자들에게는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 31일 오후 8시부터 생중계되는 ‘프로듀스48’ 파이널 경연에는 강혜원(에잇디) 권은비(울림) 김민주(얼반웍스) 김채원(울림) 미야와키 사쿠라(HKT48) 미야자키 미호(AKB48) 박해윤(FNC) 시로마 미루(NMB48) 시타오 미우(AKB48) 안유진(스타쉽) 야부키 나코(HKT48) 이가은(플레디스) 이채연(WM) 장원영(스타쉽) 조유리(스톤뮤직) 최예나(위에화) 타카하시 쥬리(AKB48) 타케우치 미유(AKB48) 한초원(큐브) 혼다 히토미(AKB48)가 오른 상태다. 이들 중 최종 선발된 12명은 팀을 이뤄 2년 6개월간 활동한다. 철저하지 못한 기획으로 ‘프로듀스48’은 Mnet의 흑역사가 될 듯하나 이를 통해 탄생하는 걸그룹만큼은 애초의 의도대로 정치와 이념을 넘어 양국을 이해하는 기회로 작용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