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국내 미투 운동 첫 실형
-法, 이윤택 징역6년·아동청소년 기관 10년 취업제한 명령
-피해자 공동변호인단 “이윤택 징역6년, 앞으로의 신호”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사진=연합뉴스)
[뷰어스=한수진 기자] 이윤택(66)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국내 ‘미투 운동’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 중 첫 실형 사례다. 바랐던 유죄 판결에 피해자들과 공동변호인단은 법정서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1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이윤택 전 감독의 유사강간치상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속행됐다. 이날 재판부는 이 전 감독에게 징역 6년, 8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 기관 10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이윤택)는 국내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업계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는 단원들을 상대로 안마 시키거나 연기 지도를 시키면서 오랜 시간 같은 방법으로 성폭력을 가했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연극을 하기 위해 피고인의 지시에 순응했다. (피고는) 권력을 남용해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한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고는 자신의 행위가 연극을 위한 행동이라고 하거나, (피해자들이) 거부하지 않아 몰랐다는 등의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 또한 재판 및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악인으로 몰아가는 등 책임 떠넘겼다”라며 양형의 이유를 들었다.
재판부는 피해자 8명에 대한 이 전 감독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일부 피해 사실의 경우 진술 외에 부합하는 증거가 없거나 법정 증언 등의 증거가 없어 무죄로 봤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사진=연합뉴스)
■ 이윤택 공동 변호인단 “미미한 형량…피해자들 조금이나마 위로 받길”
재판 직후 전국성폭력상담소 130개소 등 104명 공동 변호인 병합하고 있는 ‘이윤택 성폭력사건 공동책임위원회’ 주최로 기자회견도 진행됐다. 해당 기자회견은 책임위 참가자 발언, 재판부 판결에 대한 요약과 비평, 자유발언과 기자회견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조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가해자인 이윤택은 연극계에서 너무나 큰 존재다.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 지 숨죽이면서 지켜봤다. 선배는 자책하고 후배는 또 다른 후배에게 관습처럼 내려오는 성폭력 끊어내기 위해 공포와 두려움 이겨내며 그 자리에 섰다”며 “이윤택은 처벌 받았지만 피해자들은 그의 영향력으로 가해 질 앞으로의 압력에 대해 여전히 두려움을 느낀다. 이는 문화예술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의 판결로 인해 피해자들이 앞으로도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지하도록 지켜봐줘야 한다. 피해자들과 함께 우리도 싸워나가겠다”라며 여론의 미투 운동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많은 피해자들이 이윤택 움직임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무슨 일 겪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해 오랫동안 침묵했다. (피해자들은)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서 세상에 알린 것이 두렵지만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며 “지금도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미투를 통해서 가해자 처벌을 위해 법정을 선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피소를 당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늘 판결이 상담소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신호라고 본다. 유죄 판결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2심 3심까지 이 형량 유지될 수 있도록 대책위가 함께 법정에서 밖에서 열심히 함께 하겠다”라고 말했다.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이윤택은 최후 진술에서 자신이 저지른 성폭력에 대해 궤변을 늘어놓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성폭력이라 판단하며 사법 정의를 실현했다. 그리나 공소 시효가 만료 돼 재판조차 못 받는 피해자들은 배로 많다”며 “더욱이 연극계에서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예술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이윤택이다. 오늘 다시 한 번 이 재판 있기까지 선후배들의 용기에 존경을 표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시작된 연극계 변화가 진전을 이뤄낼 수 있도록 끝까지 싸워나가도록 하겠다. 폭력은 예술이 아니다”라며 예술계 만연한 성폭력을 꼬집었다.
공동변호인단의 발언도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미투 운동 최초 유죄 판결을 이끈 것에 대해 의미를 두며 불기소된 사건에 대해서도 재고해 줄 것을 요구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 이야기하고 고소해 판결에 이르기까지 7개월이 걸렸다. 일부 피해자들은 성폭력으로 인해 치유 받지 못할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재판부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상해로 인정한 것은 고무적이다. 더 많은 사건에서도 적용되길 바란다. 권력형 성폭력범들이 예술을 빙자해 자신의 단원들과 스태프에 대한 성희롱과 성폭력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길 바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혜경 변호사는 “선고가 되는 순간 피해자들과 함께 해온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공동변호인단 뿐 아니라 피해자들도 눈물 흘렸다”며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가림막이 쳐졌지만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에겐 고통이다. 이번 사건 통해서 다시 한 번 피해자들이 상처 받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할 때 피해자들과 함께 분노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피해자들이 겪은 마음고생에 비하면 미미한 형량이지만 실형 선고로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를 받길 바란다”라며 재판을 준비하며 겪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앞서 검찰은 이 전 감독이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와 함께 신상정보 공개와 보호관찰 명령 등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추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일반적으로 체육인들이 하는 안마 방법이라고 주장하는데 대체 어디에서 사타구니 부분을 안마시키는 것이 통용되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수년에 걸쳐 수십 명의 피해자를 낳은 점을 들어 성폭력의 상습성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감독은 연희단거리패 실질적 운영자로 극단 내 절대적 권한을 가진 점을 이용해 위력으로 1999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여배우 8명을 25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력 및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앞선 경찰 조사 당시 이 전 감독 범죄 혐의와 관련한 고소인은 17명이었다. 파악된 피해는 1999년부터 2016년까지 총 62차례에 이른다. 하지만 공소시효 관계로 처벌이 가능한 사안이 줄어 8명에 대한 25차례 혐의만 재판을 진행했다.
이 전 감독은 지난 7일 열린 결심 공판 최종 변론에서 “일부 피고인의 행위가 부적절했다고 해도 피해자들의 용인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연기 지도를 법의 잣대로 논단하는 건 새로운 장르의 예술의 씨를 자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연희단거리패가 가진 연극 예술 특성으로 봐야 하고 피해자들이 수용해서 받아들여졌는데 이제 와서 성추행이라는 건 대단히 부적절하다. (성폭력이라 보는 것은) 예술 행위에 대한 모독이다”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 전 감독의 성폭력 실체는 ‘미투 운동’(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운동)이 한창 활발하던 지난 2월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의 폭로로 드러났다. 연희단거리패 출신인 김 대표는 2월 14일 자신의 SNS을 통해 과거 이 전 감독에게 당한 성폭력을 고발했다. 김 대표의 폭로 후 연희단거리패 출신의 여러 여배우들이 잇달아 이 전 감독의 만행을 폭로하며 법정다툼으로 번졌다.
하지만 이 전 감독이 결심 공판에서도 무죄를 주장한 만큼 항소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