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방송화면)
[뷰어스=손예지 기자] 서현으로 시작해 서현으로 끝났다. 지난 20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시간’ 얘기다.
남주 주인공의 중도 하차와 용두사미 전개가 맞물리며 다소 아쉽게 퇴장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서현만큼은 빛났다.
서현은 상대역의 김정현이 건강 상의 이유로 중도 하차한 이후 무려 6회 분량을 혼자 이끌어야 했다. 이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에서 서현이 연기한 설지현은 ‘흙수저’였다. 도박과 남자를 끊지 못하는 엄마(김희정)와 대학을 다니는 동생 지은(윤지원) 사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소녀 가장. 여기까지는 국내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캔디형 캐릭터에 지나지 않았다. 서현 역시 어색함 없는 일상 연기로 극 초반의 지현을 잘 소화했다. 이에 첫 방송부터 연기 호평을 들었다.
연기적으로 평이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극 중 지현이 비극에 처하면서 서현의 하드캐리도 시작됐다. 이 드라마는 지현을 끊임없이 극한의 상황에 몰아 넣었다. 지현의 동생이 죽고 엄마도 죽었다. 지현은 가족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히고자 고군분투했으나 권력자들에 의해 좌절당했다. 설상가상 민석도 지현을 배신했다. 서현이 ‘시간’의 거의 모든 회차에서 눈물을 쏟은 배경이다.
(사진=MBC 방송화면)
분노와 절망, 슬픔 등 흠잡을 데 없는 감정 연기를 보여준 서현에게 정작 로맨스 연기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지현과 남자주인공 천수호(김정현)가 사랑으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탓이다. 수호가 지은의 죽음에 얽혔다는 이유로 지현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김정현이 하차하면서 극 중 수호가 죽게 됐다.
멜로를 이어가는 게 불가능해지자 ‘시간’은 지현이 동생과 엄마, 여기에 수호를 죽음으로 내몬 비밀을 파헤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드라마의 방향 자체가 바뀐 것이다. 당연히 흐름은 부자연스러워졌고 이야기에는 빈틈이 생겼다.
그 구멍을 메운 게 서현의 연기였다. 그는 주어진 대본을 충실히 수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석한 지현을 녹였다. 그 결과 강단있는 눈빛과 단단한 속을 지닌 지현을 완성했다. 무너진 전개에도 시청자들이 ‘시간’을 놓지 않은 결정적 이유다.
서현의 열연은 마지막까지 빛났다. 최종회에서 지현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천회장(최종환)의 악행을 폭로했다. 이에 따라 서현은 길 한가운데 서서 방대한 양의 대사를 소화했다. 특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먹이는 와중에도 탄탄한 발성과 똑부러지는 발음으로 흐트러짐 없이 대사를 전달해 감탄을 자아냈다.
‘시간’을 위해 들인 서현의 노력이 더욱 기특한 이유는 또 있다. 이 드라마가 그에게 갖는 의미가 남달라서다. 서현은 ‘시간’을 통해 미니시리즈 주연을 처음 맡았다. 첫 도전부터 캐릭터 소화 이상의 어려운 미션을 받은 셈이다. 본인에게는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겠으나 이 덕분에 시청자들은 서현을 걸그룹 소녀시대 막내가 아니라 완전한 배우로서 인식하게 됐다는 평가다.
이제 ‘시간’이라는 큰 산 하나를 넘은 서현이다. 험난한 여정을 오직 제 힘으로 완주했다는 점에서 박수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