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뷰어스=손예지 기자] 드라마는 만들어진 시기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기록하는 장르다. 이에 드라마를 시대의 거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덕분에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당대 사람들의 고민과 삶의 방식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슈 중 하나가 교육 문화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근 10년간 안방극장에는 대한민국 교육 문화를 꼬집는 작품들이 꾸준히 시청자들을 만났다. 대표적인 예로 2007년 방영한 SBS ‘강남엄마 따라잡기’(연출 홍창욱, 극본 김현희)와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SKY 캐슬’(연출 조현탁, 극본 유현미)을 꼽을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부모들의 과열된 교육 욕심을 꼬집는다는 데서 공통된 주제 의식을 갖고 있다. 다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난 11년간 자녀 교육을 대하는 부모들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주인공은 워킹맘 민주(하희라)다.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아들 진우(맹세창)를 기르는 인물이다. 어느 날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전교 1등을 도맡던 진우가 영어경시대회에서 강남 아이들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민주가 달라진다. 강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처럼 교육에 문외한이었던 민주가 강남 엄마들의 교육 전쟁에 뛰어들며 겪는 일들이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었다.
반면 ‘SKY 캐슬’의 주인공 서진(염정아)은 전업주부다. 그러나 서진의 하루 주요 일과는 집안 살림이 아니다. 그의 하루는 수험생인 첫재딸 예서(김혜윤)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인다. 대대로 의사를 지낸 시댁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서진은 입시 정보를 얻기 위해 엄마 모임에 참석하고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하는 데 거액을 들인다.
(사진=SBS, JTBC)
주목할 점은 ‘SKY 캐슬’에서의 서진은 ‘유별난’ 엄마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극 중 등장하는 대다수 엄마가 서진과 비슷하다. 게다가 서진과 다른 엄마들은 사교육을 멀리하는 동화작가 수임(이태란)을 돌연변이 취급한다. 이는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민주 외의 강남 엄마들이 ‘극성맘’으로 그려진 것과 대비된다.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거는 부모의 모습이 더는 ‘유난스러운’ 일이 아니게 된 현대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두 드라마를 통해 사교육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다뤄진 사교육의 종류가 학원이나 과외에 그친데 비해 ‘SKY 캐슬’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학원과 과외는 기본이다. 여기에 특정 학교의 내신 성적을 전담하는 팀 과외가 있는가 하면, 대학 입학까지 학생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해준다는 입시 코디네이터도 있다.
이런 가운데 ‘SKY 캐슬’ 속 서진이 고용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주영(김서형)의 역할이 흥미롭다. 국내 최고 의대 합격을 보장한다는 주영은 자신이 맡을 학생을 직접 고른다. 동시에 부모에게는 코디하는 동안 그 어떤 개입도 허용할 수 없다고 선포한다. 주영의 캐릭터 설정이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대입’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여겨지는 오늘날, 부모와 입시 코디네이터의 관계는 단순히 고용주와 고용인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실력있는 입시 코디네이터는 한정됐고 좋은 성적을 원하는 부모와 학생들은 많다. 때문에 입시 코디네이터가 오히려 갑(甲)의 위치에 오르게 되는 사교육계 현상이 ‘SKY 캐슬’의 주영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대상인 학생들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주인공의 성향이 달라진 만큼 그 자녀들의 모습도 정반대다. ‘강남엄마 따라잡기’ 속 민주의 아들 진우는 편부모 가정에서도 바르게 자랐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효심에서 비롯됐다. 강남으로 이사한 뒤 학습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던 바다.
(사진=SBS, JTBC)
하지만 ‘SKY 캐슬’ 시청자들은 서진의 딸 예서를 보며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낀다. 예서는 아빠(정준호)를 닮아 똑똑하고 엄마를 닮아 야망이 넘치는 아이다. 그래서인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보여준다. 또래 친구들을 경쟁자로만 여긴다든지,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면 상대가 어른일지라도 다소 버릇없이 구는 모습을 통해서다. 심지어 예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로만 짜인 스케줄에도 만족한다. 그뿐인가. 엄마가 입시 코디네이터를 해고하자 다시 고용해 달라고 울기까지 한다. 이러한 예서의 모습은 얄미운 한편,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예서가 현대사회 모든 아이들을 대변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SKY 캐슬’에는 부모의 욕심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 역시 함께 그려지기 때문이다. 예서 이전에 주영의 코디를 받아 명문대학에 합격한 영재(송건희)가 그 예다. 영재는 성적 때문에 부모에게 학대받아온 인물이다. 영재의 성적이 떨어지면 아빠 수창(유성주)은 폭력을 행사했고 엄마 명주(김정난)는 잠을 재우지 않았다. 최악의 시간을 버텨 부모가 원하던 대학 합격 통지서를 얻은 영재는 ‘이 집에서 태어난 것을 후회한다’는 일기를 남긴 채 가출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뒤늦게 영재를 찾아낸 명주는 “다 너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영재가 마음을 바꾸지 않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가 하면 수창은 아내의 죽음을 아들의 탓으로 돌렸다. 수창과 명주는 영재가 가족과의 절연을 결심하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끝내 영재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되레 명주의 자살로 영재만 더 큰 고통을 떠안게 됐다.
영재와 같은 캐릭터는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도 발견된다. 엄마 등쌀에 떠밀려 과학고에 진학한 창훈(김학준)이다. 그는 공부보다 미술을 좋아하지만 엄마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다. 이 때문에 갈등을 빚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강남엄마 따라잡기’ 방영 당시 창훈이 종이비행기를 날린 뒤 생을 마감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던 바다.
(사진=JTBC, SBS)
바로 여기서 ‘강남엄마 따라잡기’나 ‘SKY 캐슬’과 같은 교육 관련 드라마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나타난다. 예나 지금이나 도를 넘은 교육열 때문에 괴로워 하는 청소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56명의 초중고 학생이 성적비관이나 우울증, 가정불화 등의 이유로 자살했다.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창훈이나 ‘SKY 캐슬’의 영재와 같은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다는 뜻이다.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국내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교육 문제를 다룬 뒤 11년 만에 방영되고 있는 ‘SKY 캐슬’을 시청하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