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소희 기자] 드라마는 유의미한 장면들로 이뤄진다. 한 장면 속에 인물의 삶을 보여주는 상황,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대사들이 담긴다. 작품, 그리고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들여다볼만 한 장면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사진=JTBC 화면 캡처)
■ 장면 정보
작품 제목: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
방송 일자: 20189년 1월 5일 (14회)
상황 설명: 딸 차세리(박유나)가 하버드생임을 굳게 믿고 있던 노승혜(윤세아). 하지만 미국에서 걸려온 언니의 전화를 받고 모든 것이 세리의 거짓말이었음을 깨닫고 큰 충격에 빠진다. 이 사실은 캐슬 주민들에게까지 알려지고 승혜는 자신을 찾아온 이수임(이태란)과 진진희(오나라)에 심경을 토로한다.
■ 장면 포착
(딸의 거짓말에 충격 받은 승혜가 걱정돼 찾아온 수임과 진희)
승혜: 정말 모르겠어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도 애들 잘 키우는 게 우선이지 싶어서 내 꿈은 다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내 인생이 빈껍데기 같아요.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어요.
(이수임, 눈물 흘리는 승혜의 손을 잡아준다)
승혜: 다 내 잘못이에요. 애초에 미국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쌍둥이 키우는데 정신없는데 언니가 세리는 맡아주겠다고 하니까 일면 홀가분하더라고요. 13살 그 어린 것을 떼어놓고 성적 잘 나온다고 좋아만 했어요. 내가, 내가 죽일 년이에요.
진희: 그게 왜 언니 잘못이에요. 나는 수한이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든데. 그리고 세리가 미국에서 공부하겠다고 했다면서요.
승혜: 애들 아빠가 공부공부하니까 행여 어긋날까 난... 난 정말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해요. 내 속으로 낳은 딸이 어떻게 그런 사기를 쳐요. 차라리 내가 그냥 죽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사진=HB엔터테인먼트, 드라마하우스 제공)
■ 이 장면, 왜?
노승혜는 캐슬 주민 중 ‘선(善)’을 담당하고 있는 이수임을 제외하고 그나마 옳은 방향을 추구하던 인물이다. 다른 주민들이 그 무엇보다 성적을 강조할 때 노승혜는 행여 아이들이 삐뚤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수시로 답답한 아이들의 숨통을 터줬다. 하지만 그런 노승혜의 자식마저 성적의 노예로 전락해 하버드로부터 손해배상청구까지 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런 노승혜의 상황은 이 캐슬 안에 사는 이들은 왜 모두 틀린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과연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일까 씁쓸한 물음표를 남긴다. 모두가 틀리다고 생각했던 이수임은 주민들의 해결사로 나서고, 자신들이 맞다고 생각했던 주민들은 점점 더 수렁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내 꿈을 모두 포기하면서 자식을 키웠지만 인생이 빈껍데기 같다”는 노승혜의 말은 캐슬 주민들이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는 인물은 비단 노승혜 뿐만이 아니다. 앞서 이명주(김정난)는 죽음을, 그의 남편인 박수창(유성주)는 가정 파탄을 맞았다. 충격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한서진(염정아)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자식의 입시에만 매달린다.
‘SKY 캐슬’은 이미 캐슬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되짚고 있다. 작품은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의 입을 빌어 그 어떤 코디를 불러도 가정의 불행은 닥쳤을 것이라고, 이런 지경까지 온 것은 부모의 탓이라고 매번 강조한다. 물론 이렇게까지 사람을 변화시킨 사회적 문제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가슴이 무너진 심정을 토로하는 노승혜의 대사와 점점 기세등등해지는 김주영의 대사가 맞물려 지나친 욕망이 더 큰 비극을 부추기고 있다는 메시지를 드리운다.
현재 캐슬 주민들의 상황은 한서진의 말마따나 ‘늪’과 같다. 노승혜는 딸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남편 차민혁(김병철)으로 인해 가정불화를 겪는다. 한서진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딸 강예서(김혜윤)는 부모 대신 김주영에 의지하며 점점 안하무인이 되어간다. 강준상(정준호) 집안을 흔들던 강혜나(김보라)는 추락해 생사를 알 수 없다.
캐슬 주민은 비극을 비극으로 덮는 길을 피할 수 있을까. 극 후반, 노승혜는 차세리의 뺨을 때린 남편에 ‘우리 딸’이 아닌 ‘내 딸’에게 손대지 말라고 처음으로 울부짖었다. 한 섞인 울분을 거친 뒤 점점 더 적극적으로 집안의 개혁을 일으킬 노승혜가 캐슬의 또 다른 길을 열 수 있을지 기대를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