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RK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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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어스=이소희 기자] “겨우 간 찾았는데 포상휴가 갔다가 간 떼고 올 뻔 했죠”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에 출연했던 전혜빈에게 포상휴가가 어땠냐고 묻자 돌아온 농담이다. 앞서 드라마 속 풍상(유준상)은 간암에 걸렸지만 성공적으로 간 이식을 받아 건강을 되찾은 바 있다. 이에 빗대 술을 많이 마셨다고 간에 대한 농담을 던진 전혜빈의 발언은 그만큼 화기애애했던 현장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말이었다.

‘왜그래 풍상씨’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현장 분위기가 가족 같았다고 전했다. 전혜빈 또한 유달리 애착이 가는 현장이었다며 거듭 강조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드라마는 평생을 ‘동생바보’로 살아온 풍상과 그 형제들이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 풍상을 필두로 진상, 정상, 화상, 외상이 매일 부딪히며 하루도 조용할 틈 없는 나날을 보낸 덕에 배우들은 진짜 가족이 된 듯 실감나는 연기를 펼쳤다.

“해외가 아닌 부산으로 포상휴가를 가서 그런지 참여율이 높았어요. 스태프 분들도 대부분 오셨어요. 한을 풀 듯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아요. 드라마 끝나고 헤어지려니 유독 아쉬웠거든요. 배우들끼리도 주조연 할 것 없이 가깝게 지냈고 같은 학교를 나온 분들도 계셨어요. 게다가 진짜 형제가 되어 치고 박고 싸우다 보니 촬영하는 그 순간만큼은 진짜 울화통이 터지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보통의 관계에서는 느끼지 못할 감정들이라 더 정이 많이 든 건가 싶기도 해요”

전혜빈은 극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람으로 비춰지는 셋째 정상을 연기했다. 하지만 그런 정상에게도 남모를 아픔과 힘든 관계들이 있었다. 쌍둥이 화상(이시영)과는 웬수 같은 사이로 지냈고 또 연인 사이에 있어서도 꽤 복잡한 사정을 지녔다.

(사진=ARK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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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화상이 보는 게 가장 속 터졌죠. (웃음) 아무래도 쌍둥이니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화상은 열등감, 피해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잖아요. 늘 비교당하며 살고. 시청자분들 중에서도 분명 화상의 편이었던 분들이 계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화상의 사정을 알고 나니 눈물이 나고 속상하더라고요”

정상과 화상은 이름만큼이나 정반대의 생각과 성격을 지녔다. 정상이 시크하고 냉정한 모습이라면 화상은 철없이 발랄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줬다. 이에 전혜빈은 “시영언니가 화상을 연기해서 찰떡이었다”면서 “그 언니는 평소에도 화상이처럼 한다. 언제 한 번은 외상이(이창엽)에게 심하게 장난을 쳐서 운적도 있다더라. 실제로도 그 특유의 발랄함이 있고 재미있고 사랑스럽다”면서 진짜 친한 사이이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시영은 엄청난 노력파라며 그를 보고 자극을 받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쌍둥이 육탄전 장면이 많이 나왔잖아요. 둘 다 이미지가 세서 (웃음) 그런 부분에서 재미가 더 나왔던 것 같아요. 머리끄덩이 잡을 때 언니가 진짜 세게 잡으면 나도 똑같이 세게 잡고. 서로 쌍싸대기 때리는 장면에서는 ‘우리 한 번 제대로 가보자’고 해서 진짜로 세게 때렸어요. 빗겨 맞듯 하니까 연기의 맛이 안 살더라고요. 그렇게 맞으니 연기가 아니라 진짜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사실 나는 오른손잡이고 시영언니는 왼손잡이인데 서로 오른손으로 때렸어요. 하하. 이렇게 진짜 자매처럼 몰입해서 촬영했어요”

전혜빈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로 자매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또 전혜빈과 이시영 특유의 털털함과 매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일화여서, 이들이 왜 그렇게 ‘왜그래 풍상씨’에서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준상오빠와도 일화가 있어요.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정상을 때리는 장면이었는데, 너무 세게 맞아서 내가 날아간 거예요. 막 앰뷸런스 불러달라고 했죠. (웃음)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가벼운 뇌진탕마냥 머리가 이만큼 붓고 어지럽더라고요. 준상오빠는 계속 전화를 하며 걱정하셔서 괜찮다고 했어요. 사실 정말 아팠답니다. 하하. 그러면서도 내 결혼식 장면에서는 서로 눈도 못 쳐다볼 정도로 눈물이 터졌어요. 대사를 잘 하지 못할 정도였죠”

(사진=ARK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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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래 풍상씨’ 배우들은 정말 가족이 되어 진심을 담아 연기했다. 그리고 전혜빈은 이토록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던 건 훌륭한 배우와 제작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배우가 NG를 내지 않게끔 잘 서포트하자는 제작진의 다짐까지 있었다.

“문영남 작가님은 대본을 쓰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을 쓰시는 분 같아요.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사람이고 거기에는 각자만의 인생이 꿰어 있어요. 진짜 예술가이신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도 이렇게 캐릭터를 그려내려면 사람을 얼마나 깊게 헤아려야 하는 건지 느꼈어요. 또 아버지가 풍상 같은 모습이신데 맨날 답답하게만 생각했거든요. 드라마를 통해 아버지를 헤아릴 수 있게 됐어요. 아버지도 드라마를 보고 나에게 처음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풍상에 감정이입이 돼 울면서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드라마 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동네 아주머니들도 만날 때마다 손 잡아주시고. 참 좋은 작품을 만났다는 걸 주변을 보며 느껴요”

심지어 전혜빈은 촬영을 하다가 실제 가족 중 한 명이 간암에 걸려 간호를 하고 있는 가족을 마주치기도 했다. 전혜빈의 말에 따르면 보호자 대기실에서 만났던 이는 ‘왜그래 풍상씨’가 자기네 상황과 똑같아서 오히려 방송을 못 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전혜빈의 손을 잡고 “꼭 해피엔딩으로 끝내달라”고 소원했다. 이런 진심어린 피드백을 들은 전헤빈은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재미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구나’ ‘한 신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거나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도 있구나’를 느꼈다고. 

“배우라면 거쳐야 할 정석 같은 게 있다면 문영남 작가님의 대본이 아닐까 싶어요. 함께 작품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반석을 깐 느낌이에요. 사실 돌아보면 좋은 기회로 한순간에 스타가 되는 분들도 있고, 돌고 돌아 자기의 영역을 만드는 분들도 있어요. 난 전자가 아니었어요. 차근차근 올라가며 다 겪어야 오래 가는 배우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뿌리를 깊게 내려야 튼튼하게 가지를 뻗을 수 있잖아요. 아직 그렇게 되기까지는 멀었지만, 한 작품씩 할 때마다 ‘이번에 또 이렇게 단단한 기반을 만들었구나’ 싶어요. 계단을 하나하나 만들며 올라가는 느낌인 거죠. 그런 게 멋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