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임브리지대에 재직 중인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저작을 통해 선진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일어났던 문제들과 그들이 선진국이 되고나서 개발도상국에게 요구하는 위선적인 행태들을 꼬집었다. 19세기 경제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당시 선진국이었던 영국의 교역정책을 후발주자인 독일의 입장에서 비판한 시각으로 현재를 들여다본 거다. 문형민 편집국장 대표적인 사례가 '유치산업' 이론이다. 개발도상국은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개도국 정부는 이를 위해 수입을 제한하거나 관세를 높이는 등 정책적 노력을 다한다. 문제는 선진국이다. 선진국은 자신들도 이렇게 산업을 발전시켜놓고는 올챙이적 생각을 않고 개도국이 같은 방법을 쓰지 못하게 방해한다. 자유무역이라는 거창한 담론을 만들고, 각종 규제 장치를 만든다. 관세정책에서부터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엄격한 준수, 철저한 노동자들의 권익보호 등을 요구한다. 흔히 얘기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서방의 선진국들의 발전 과정을 보면 자유무역, 자유방임주의와 거리가 한참 멀었다. 18세기 영국은 낙후된 섬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높은 관세와 수입금지 처분 등 온갖 보호 정책을 썼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미국과 같은 후진국의 정부는 관세나 보조금 등을 통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자국 은행산업 육성을 위해 외국인이 30% 이상 투자한 국책은행의 허가를 취소하기도 했다. 자유무역협정(WTO)은 과연 공정한가. 이 또한 선진국들이 다른 국가들에게 강요하는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도 지속적으로 농산물 관세 철폐를 압박받았다. 제조업 성장을 위해 농업, 농민의 희생을 강요한 셈이다. 최근 몇 년새 'ESG'가 경영과 투자의 새 지침으로 떠올랐다.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을 기업이 감안해야한다는 거다. 즉,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며, 법과 윤리를 철저히 준수하는 경영을 하라는 얘기다. 개념 그대로 보면 ESG 경영에 반대할 수 없다. 착한 사마리아인을 원한다는데 누가 거역할 것인가. 다만 우려되는 건 또다른 형태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닐까싶은 거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길고 자본의 축적이나 기술의 완성도에서 높은 선진국들이 개도국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ESG를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SG에 따라 선진국은 제조과정이 친환경적이고, 친노동적인 제품을 자국에 수출할 수 있게 규제를 만든다. 선진국들은 이미 이 기준을 맞췄다. 하지만 개도국의 기업들은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 그러면 제조원가가 올라가고 경쟁력이 약해지게 된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만들어지는 거다. 사회적 책임이나 지배구조도 마찬가지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관계에서 약소국의 이런 하소연이 받아들여지긴 쉽지 않다. ESG가 어떤 국가, 어떤 기업에겐 만능키가 아닌 셈이다. ESG가 만고의 진리인 것처럼 받들어모시는 행태는 경계하는 게 좋겠다. 문형민 편집국장

[데스크 칼럼] 사다리 걷어차기와 ESG의 역설

문형민 기자 승인 2022.07.18 17:49 | 최종 수정 2022.07.19 09:22 의견 0

캐임브리지대에 재직 중인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저작을 통해 선진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일어났던 문제들과 그들이 선진국이 되고나서 개발도상국에게 요구하는 위선적인 행태들을 꼬집었다. 19세기 경제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당시 선진국이었던 영국의 교역정책을 후발주자인 독일의 입장에서 비판한 시각으로 현재를 들여다본 거다.

문형민 편집국장


대표적인 사례가 '유치산업' 이론이다. 개발도상국은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개도국 정부는 이를 위해 수입을 제한하거나 관세를 높이는 등 정책적 노력을 다한다.

문제는 선진국이다. 선진국은 자신들도 이렇게 산업을 발전시켜놓고는 올챙이적 생각을 않고 개도국이 같은 방법을 쓰지 못하게 방해한다. 자유무역이라는 거창한 담론을 만들고, 각종 규제 장치를 만든다. 관세정책에서부터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엄격한 준수, 철저한 노동자들의 권익보호 등을 요구한다. 흔히 얘기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서방의 선진국들의 발전 과정을 보면 자유무역, 자유방임주의와 거리가 한참 멀었다. 18세기 영국은 낙후된 섬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높은 관세와 수입금지 처분 등 온갖 보호 정책을 썼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미국과 같은 후진국의 정부는 관세나 보조금 등을 통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자국 은행산업 육성을 위해 외국인이 30% 이상 투자한 국책은행의 허가를 취소하기도 했다.

자유무역협정(WTO)은 과연 공정한가. 이 또한 선진국들이 다른 국가들에게 강요하는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도 지속적으로 농산물 관세 철폐를 압박받았다. 제조업 성장을 위해 농업, 농민의 희생을 강요한 셈이다.

최근 몇 년새 'ESG'가 경영과 투자의 새 지침으로 떠올랐다.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을 기업이 감안해야한다는 거다. 즉,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며, 법과 윤리를 철저히 준수하는 경영을 하라는 얘기다.

개념 그대로 보면 ESG 경영에 반대할 수 없다. 착한 사마리아인을 원한다는데 누가 거역할 것인가. 다만 우려되는 건 또다른 형태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닐까싶은 거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길고 자본의 축적이나 기술의 완성도에서 높은 선진국들이 개도국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ESG를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SG에 따라 선진국은 제조과정이 친환경적이고, 친노동적인 제품을 자국에 수출할 수 있게 규제를 만든다. 선진국들은 이미 이 기준을 맞췄다. 하지만 개도국의 기업들은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 그러면 제조원가가 올라가고 경쟁력이 약해지게 된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만들어지는 거다. 사회적 책임이나 지배구조도 마찬가지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관계에서 약소국의 이런 하소연이 받아들여지긴 쉽지 않다. ESG가 어떤 국가, 어떤 기업에겐 만능키가 아닌 셈이다. ESG가 만고의 진리인 것처럼 받들어모시는 행태는 경계하는 게 좋겠다.

문형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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