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
는 '그룹지배구조 개선방안 검토' 문건. 실제로 이 문건에서 제시된 대응책은 상당 부분 실행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5-1의 '물산이 생명 보유 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안'이 실행으로 옮겨져야 하는 단계다.<자료=국회 삼성생명 긴급토론회 자료집>


지난 18일 국회서 열린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 어떻게 풀 것인가’ 긴급토론회에서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성영 전 국회의원 보좌관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쟁점 두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19·20·21대(2012~2024년) 국회에서 일명 ‘삼성생명법’을 주도했고, ‘삼성 저격수’, ‘금융계 저승사자’란 별칭의 소유자답게 이슈에 대한 이해도와 깊이가 남달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첫 번째 충격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10% 가운데 5.15%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무관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통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세간의 말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렸다’는 겁니다. 이는 공정거래법의 ‘15% 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국내 회사로서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회사는 취득 또는 소유하고 있는 국내 계열회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금융사가 보유한 비금융사 지분은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2002년 예외 조항이 생깁니다. 정관변경, 이사 선임·해임, 합병 등 주요 사안에 한해 계열사 합산 기준 15%까지 의결권을 허용한 겁니다. 이른바 ‘15% 룰’입니다.

올해 8월 기준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생명 8.51%, 삼성물산 5.05%, 총수 일가 4.92%, 삼성화재 1.49% 등 총 20.15%입니다. 위 공정거래법에 따라 합산 15%까지만 의결권이 허용되므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10.0% 가운데 5.15%(20.15-15.0=5.15)는 의결권과 무관한 주식이 됩니다. 4.85%(10.0-5.15=4.85)만 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죠.

이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지분 약 5%를 처분해도 그룹 지배구조에는 전혀 영향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은 단 한 주도 팔 수 없다고 하는 걸까요.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주식을 팔면 매각 차익을 배분해야 하는데 삼성생명 입장에선 소요되는 비용과 절차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게다가 안 팔고 버티면 유배당 계약자 몫이 자연스럽게 주주 몫으로 넘어오기 때문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CEO가 총수 눈 밖에 나면서까지 앞장서서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지배구조 문제 때문에 ‘절대 팔 수 없는 주식’으로 세간에 각인이 돼 있으니,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고 조용히 유배당 계약자의 사망을 기다리는 것이 훨씬 유리한 선택지였다는 거죠.

더욱이 2001년까지만 해도 '15% 룰'이 없었습니다. 이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의결권이 전혀 없던 시절에도 고 이건희 회장은 아무 문제 없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그룹의 지배구조 때문에 절대 팔 수 없는 주식이 아닌 셈이죠. 아울러 삼성전자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규정에 따라 외국인이 인수·합병할 수 없는 회사라고 합니다. 김성영 전 보좌관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면 외국인들에 의한 적대적 M&A 시도가 우려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자료=국회 삼성생명 긴급토론회 자료집>


두 번째 충격은 금융당국의 보험업감독규정이 불법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19~21대 국회서 세 번이나 좌절된 이른바 ‘삼성생명법’의 핵심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보험사의 자산은 보험계약자의 보험료가 원천입니다. 보험사는 자산을 운용할 때 특정 회사에 과도하게 투자하면 안 됩니다. 자칫 큰 손실이 나면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할 보험금이 부족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험업법에서는 총자산의 3% 초과 투자를 금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3% 룰’입니다.

올해 6월말 기준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218조원(일반계정)입니다. ‘3% 룰’을 적용하면 계열사 주식을 6조5400억원 초과해 보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8.51%나 갖고 있죠. 27일 종가 기준 35조5757억원에 달합니다. 3% 기준을 29조원이나 초과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보험업감독규정(금융위원회 고시)을 통해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5444억원) 기준을 적용, 계열사 주식에 대한 과도한 보유를 눈감아 줬습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폭락하면 삼성생명은 자산건전성이 곧바로 크게 타격을 받는 재무구조입니다. 우리나라 보험사 중에 이런 재무구조를 가진 보험사는 삼성생명이 유일합니다.

지금까지는 금융당국이 보험업감독규정을 통해 삼성그룹의 편의를 봐준 것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진행된 조치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성영 전 보좌관은 금융당국의 조치가 ‘불법’이라고 단언합니다. 행정규제기본법에서는 규제의 세부적인 내용을 법률 또는 상위법령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한 바에 따라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현행 보험업감독규정의 자산운용비율 적용기준 등은 ‘보험업법’, ‘보험업법 시행령’ 그 어디에도 위임 규정이 없다는 겁니다. 결국 취득원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보험업감독규정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을 위반한 위헌적 규정이자 행정규제기본법을 위반한 불법 규정이라는 지적입니다.

이와 관련, 김성영 전 보좌관은 토론회에서 “금융위원회도 서면질의 답변을 통해 불법을 인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보험업법 카테고리가 아닌 금융위 고시에 취득원가 기준을 숨겨놓는 꼼수를 부린 배경에 대해 당시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가 ‘삼성생명의 부담 완화 차원이었다’고 실토한 방송 인터뷰도 공개했습니다.

이런 전후 사정을 고려해 김 전 보좌관은 삼성생명법 국회 통과 외에 헌법소원 제기를 사태 해결의 한 방안으로 제시했습니다. 현행 보험업감독규정이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규정이므로 삼성생명 유배당 계약자들이 ‘배당받을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할 경우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2010년 삼성생명 상장 당시 법원은 유배당 계약자들이 제기한 상장차익 배분 소송에서 “나중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게 되면 그때 배당을 받을 것”이라며 원고 패소 판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이달 공시를 통해 ‘삼성전자 지분매각 계획이 없다’고 명확히 밝힌 만큼 과거 법원의 논리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김 전 보좌관은 “세상에 필요 없는 걱정이 삼성 걱정”이란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든, 헌법소원이 인용되든 삼성그룹은 큰 타격이 없다는 얘깁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세우며 ‘15% 룰’을 ‘5% 룰’로 강화하겠다고 밝혔을 때 이미 삼성그룹은 꼼꼼하게 대책을 마련했다는 겁니다. 세간에 ‘프로젝트 G’로 알려진 바로 그 대책입니다. 당시 문건에선 이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자가 생명 보유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

-생명의 전자 지분은 지금 당장 법적으로 해소되어야 할 의무는 없으나 향후에도 금산분리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요구가 예상되므로 중장기적으로 해소 필요

-그러나 금산분리를 위해 전자 지분 7.2%(약 14조원)를 매입 가능한 주체가 현실적으로 부재

-전자는 자사주를 확대하는 한편, 물산이 전자 주식을 점진적으로 매입하여 생명이 보유한 전자 지분을 5% 이내로 축소(1대주주 회피)하는 방안을 추진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할 경우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된다는 일각의 우려도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삼성전자 지분을 넘겨받아도 삼성물산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지 않는다는 계산입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세상에 알려진 많은 정보들 중에 사실이 아닌 것들이 상당히 많다는 설명입니다. 그는 12년 보좌관 생활 동안 금융당국과 삼성그룹의 해명과 주장은 절대로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금융의 기본 중의 기본은 금융기관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재산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해 잘 관리하고 그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생명은 고객 돈을 잘 운용해서 혼자서 다 먹겠다고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삼성생명 이슈의 핵심입니다. 여기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공동체에서 같이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국회가 계속 용인하는 것 또한 국회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료=국회 삼성생명 긴급토론회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