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견·중소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준 미흡으로 계약 및 수주 파기 가능성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대한상공회의소)
“글로벌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본사뿐 아니라 협력사까지 이러한 기준을 맞출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18일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계약에 있어서 ESG 기준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협력사인 중소기업에도 이러한 기준에 맞도록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SG 경영이 협력사까지 포함한 제품 제작 전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ESG를 실천하기에 대기업과 협력사인 중소기업 사이에 온도차가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중견·중소기업들은 ESG를 실천하기 위한 인력이나 비용 등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발등에 불’ ESG…“2차 협력사의 이슈까지 살피기도”
국내 수출기업 대부분은 ESG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제는 미국이나 유럽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ESG 기준에 미흡한 업체와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입찰 단계에서부터 ESG 요구사항을 기준으로 제시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수출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입찰 단계에서부터 요구하고 있다”며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본사뿐 아니라 협력사까지 모두 ESG 기준에 부합하도록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어떤 기업은 1차 협력사가 아닌 2차 협력사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이 인권 문제나 환경 관련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협력사와 거래를 중단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글로벌 고객사를 중심으로 공급업체들의 협력사까지도 ESG를 지키는지 확인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의 대기업들에도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ESG를 투자기업의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삼고 있다. ESG 기준에 미흡한 기업은 투자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오는 25일부터 타이어 업사이클링 슈즈 스타트업 브랜드 ‘트레드앤그루브’와 함께 타이어를 재활용해 제작한 스니커즈를 트레드앤그루브 공식 홈페이지에서 100켤레 추가 판매를 진행한다. (사진=한국타이어)
■ 소비자들도 안다…폐타이어 재활용 스니커즈 완판 사례
소비자들도 ESG를 지키는 기업의 제품을 선호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기업들 입장에서는 고객들이 환경보호 기업을 선호한다든지 의미 있는 소비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재활용 제품을 하찮게 여겼다면 지금은 달라졌다”며 “재활용 과정에서 제품이 더 비싸질 수도 있는데도 소비자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있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타이어는 재활용 신발 제조 스타트업 트레드앤그루브와 콜라보레이션으로 신발을 제조했는데 불타나게 팔렸다. 한국타이어는 폐타이어를 제공하고 트레드앤그루브는 이를 신발 밑창에 재활용해 한정판 스니커즈를 만들었다. 해당 스니커즈는 완판해 또 한 번의 앵콜 판매가 이뤄지기도 했다.
LG화학은 삼표시멘트, 현대로템, 한국엔지니어연합회, 한국시멘트협회와 함께 ‘폐플라스틱의 시멘트 대체 연료 활용을 통한 자원 선순환 생태계 구축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폐플라스틱 자원 선순환 생태계 (사진=LG화학)
■ CEO 결단 필요해…신학철 LG화학 CEO, 자원순환체계 구축 적극 투자
ESG 경영은 최고경영자(CEO)의 결단이 좌지우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LG화학은 오는 2030년까지 사업의 전체 단계에서 탄소중립을 목표로 설정하고 실천에 나서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폐자원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당장에 시설부터 해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며 “CEO의 결단이 없이는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LG화학은 전 세계 사업장 사용 전력을 태양열,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PPA) 등을 통해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 또한 플라스틱 생산, 수거, 재활용까지 이어지는 자원순환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옥수수 성분의 포도당을 활용한 바이오 함량 100%의 생분해성 합성수지도 개발했다.
LG화학 관계자는 “LG화학은 2050년 넷제로 달성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 중견·중소기업 계약·수주 파기 ‘부담’
하지만 최근 많은 수의 중소 협력사들이 대기업의 ESG 요구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수출기업 절반 이상이 ESG 기준 미흡으로 원청기업으로부터 계약·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수출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수출기업의 공급망 ESG 실사 대응 현황과 과제’를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52.2%가 이처럼 답했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앞서 유럽연합(EU)은 지난 2월 공급망 실사 기준 초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인권, 환경, 기업 이사회의 의무, 인센티브 항목 등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독일은 내년 1월부터 ‘공급망 실사법’을 시행에 나선다. 이 평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국내 수출기업은 원청 기업과 거래가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 수출기업 상당수는 원청기업의 ESG 실사에 대한 대비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ESG 실사 대비 수준에 대한 질문에 ‘낮다’는 응답은 77.2%로 집계됐고, ‘높다’는 응답은 22.8%에 불과했다. 실사 단계별 대응 수준에도 ‘대응체계 없다’는 응답이 58.1%나 된다.
ESG 경영 실천 관련 기업 애로사항 및 정책 과제 설문조사 표 (자료=대한상의)
중소·중견 기업과 연계된 협력업체들은 ESG에 대한 대비가 되지 않았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대기업은 비교적 ESG 경영을 잘 수행하고 있는 편인데 반해 공급망 중간에 위치한 중소·중견기업은 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고객사의 ESG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며 “하위 협력사까지 관리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의 이번 조사에서 수출기업 48.1%는 ‘내부 전문인력 부족’을 공급망 ESG 실사 관련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어 ‘진단·컨설팅·교육 비용 부담’이 22.3%, ‘공급망 ESG 실사 정보 부족’이 12.3%로 뒤를 이었다.
가장 필요한 정책과제로는 ▲업종별 ESG 가이드라인 제공(35.%) ▲ESG 실사 비용 지원(23.9%) ▲협력사 ESG 교육·컨설팅 비용 지원 ▲ESG 인프라·시스템 구축 금융지원(16.3%) 등으로 조사됐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공급망 관리를 잘하는 기업은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다”며 “대한상의도 수출기업들을 위해 공급망 ESG 실사, 컨설팅, 전문인력 양성 등을 지속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