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 패권을 가르는 무역·투자·기술 경쟁의 무대가 됐다. 늦으면 기회를 잃는 것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국면이다. 우리나라 산업의 녹색 전환은 생존 전략이 된 셈이다.
■ 유럽, 규제 장벽으로 녹색의 세금화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기후 정책을 본격적인 무역 무기로 전환하고 있다. EU 이사회는 최근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에 대해 CBAM 시행을 확정했다. 올해 10월부터 EU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탄소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며, 2026년부터는 기준을 초과하는 배출량에 대해 배출권(CBAM 인증서)을 구매해야 한다. 사실상의 ‘탄소세’다.
한국은 EU의 5대 철강 수입국 가운데 하나다. 2024년 대EU 철강 수출 규모만 약 40억 달러에 달한다. 업계는 CBAM으로 연간 최대 60억 달러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더 큰 문제는 CBAM 적용이 자동차·가전 등 전방 산업의 완제품까지 확대될 경우, 한국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 미국, 동맹도 경쟁자로 만드는 ‘보조금’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보조금 정책을 가동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풍력·태양광 설비 등 청정에너지 산업 전반에만 3,690억 달러(약 500조 원)를 투입한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현지 합작법인을 세우며 IRA 혜택을 활용하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 내 투자 의존도가 심화되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IRA는 동맹국 협력을 내세우면서도 미국 산업 보호를 전제로 하고 있어, ‘동맹이자 경쟁자’라는 미국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녹색산업 협력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삼정KPMG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 조선업체들은 미국 현지 합작 거점 확대와 친환경 선박 투자로 시장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며, 에너지 도입선 다변화와 차세대 원전 기술 협력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중국, 대륙의 대규모 투자로 빠른 속도 전환
중국은 ‘속도’라는 무기를 쥐고 있다. 세계 태양광 모듈 생산의 80%, 배터리 생산의 60%를 이미 장악했고, 풍력·수전해 설비 투자 규모는 세계 최대다.중국의 전략은 단순한 제조업 기반 확보를 넘어, ‘재생에너지·수소 대국’으로 녹색 공급망 전체를 틀어쥐는 데 있다. 일부 고에너지 소비 산업에는 녹색전력 인증(GEC) 제도를 도입해 산업 전반의 저탄소화를 강제하고 있으며, 에너지 안보와 기술 내재화까지 동시에 추진 중이다.
2024년 기준 중국은 신규 풍력 설비 용량만 8,699만kW를 설치했고, 누적 설비 용량은 5억kW를 넘어섰다. 이런 대륙 규모의 투자는 저가 공세와 기술 추격으로 이어져 한국 산업에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한다.
■ 열강 압박 속···한국 산업 퇴로 없는 전환기
EU의 규제, 미국의 보조금, 중국의 속도. 세 가지 힘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한국 산업은 녹색 전환을 넘어 산업 생존 전략을 요구받는다. 철강·석유화학은 전력 확보 전쟁 속에서 이미 ‘기후 악당’의 낙인을 안고 있고, 반도체·배터리 기업은 글로벌 보조금 전쟁의 중심에 서 있다. ‘전력망·수출 경쟁력·공급망’의 문제를 풀지 못하면 한국 산업은 녹색 전환의 무대에서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