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판교 테크노밸리. (사진=연합뉴스)
"돈에 미친 x끼"
국내 게임사를 바라보는 이용자들의 시선은 대개 이렇습니다. 어느 게임 관련 커뮤니티나 게임사와 관련한 뉴스 댓글 대부분은 이 같은 내용이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기업이 돈을 버는 게 뭐가 나쁘냐, 안사면 그만 아닌가"라고 말하기에는 그동안 정도가 지나쳤다라는 뜻으로도 풀이됩니다.
국내 게임사가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시점은 PC 온라인 MMORPG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입니다. 초기 게임사의 수익 구조는 패키지 판매였고 온라인 MMORPG에서도 이른바 '정액제' 시스템으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게임을 마음껏 플레이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입니다.
넥슨 PC MMORPG '마비노기'에서는 '나오'가 정액제 없이 2시간을 무료로 이용하는 플레이어를 잡아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시간 무료 이용시간이 끝났으니 게임에서 이제 그만 나가달라는거죠. 그런데 어느순간 국내 PC MMORPG 게임들이 '우리 게임은 무료'라는 타이틀을 내걸기 시작했습니다. 대략적인 시점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2007년과 2008년 언저리로 보입니다. 그후로 많은 정액제 게임이 '전면 무료화'로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합니다. 게임 개발만 하면 끝이 아닙니다. 개발에 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이후로는 서버 유지 비용, 인건비, 마케팅 비용 등등이 줄줄이 투입됩니다. 그런데 무료 게임은 돈을 어떻게 벌기 시작했을까요. 소위 말하는 캐시 아이템 판매로 대표되는 부분 유료화 체계입니다. 캐시 아이템은 단순한 '꾸미기 의상'에서부터 펫과 탈 것 등 다양하게 나왔습니다.
'마비노기' 얘기가 나왔으니 '마비노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마비노기' 초기 부분 유료화 아이템은 이용자들의 원활한 플레이를 도와주는 '펫'이 대표적이었습니다. 가방과 이동수단 역할을 해줬고 전투에서 도움까지 주니 참 고마운 존재긴 했습니다. 다만 귀여운 외모와 성능에 반해 펫들을 하나하나 늘리다보니 어린 나이에 조금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되기도 하더군요.
캐시 아이템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수익이 늘어나는 걸 지켜본 정액제 게임들은 정액제에서도 프리미엄과 스탠다드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3만원짜리 정액제보다 5만원짜리 정액제가 이용자들에게 더 유용한 효과를 주는 겁니다. 한번 5만원짜리를 맛봤다면 다시는 3만원짜리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거죠.
저도 일찍이 PC MMORPG에 눈을 뜬 하드 게이머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라는 말이 종종 입밖으로 튀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MMORPG는 대부분 경쟁 게임인데 내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게 맞아죽는다면 이 간극을 가장 빠르게 메꿀 수 있는 건 '현금술'이었으니까요.
아무튼 PC MMORPG가 주류가 된 게임시장에서도 이용자들의 불만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과금'이 문제로 떠오른 시점은 모바일 게임 시장 부상 이후로 보입니다. 이미 2005년 '메이플스토리'가 국내에서 '가챠' 캐시 아이템을 최초로 선보였었고 국내 PC MMORPG 게임들이 유사한 형태의 게임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죠. 이전부터 있던 확률에 따른 강화 시스템에 맞춰 실패 시 아이템을 보존한다거나 하는 것도 추가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지금은 당연한 과금 체계가 돼버린 뽑기는 수집 개념입니다. 일본 서브컬처 게임 '확산성 밀리언 아서'가 대표적입니다. 제가 대학 시절에서 봤던 게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국내에서는 해당 게임 이전까지는 눈에 띄는 모바일 수집형 RPG 게임은 없던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이후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도 유사한 게임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모바일 MMORPG게임은 이 같은 가챠 시스템을 차용합니다. 엄청나게 낮은 확률로 어마어마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을 뽑을 수 있게 만든거죠.
'뽑기'는 게임사에 많은 돈을 벌어다 줬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게임사가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난 수위가 높아지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은 점점 커졌습니다. 지쳐버린 이용자가 떠난다면 단순 게임 하나가 망하는 걸 떠나 게임 산업 전반에 불황이 찾아오니까요.
이에 따라 국내 게임사들도 배틀패스 도입을 비롯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만 그동안 너무나도 덩치가 커져버린 게임사들은 매출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례로 엔씨소프트는 '블레이드 앤 소울2'를 선보였을 당시 매출 1등을 하지 못하고 2등을 했다는 이유로 '실패작'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올해 넥슨이 유저 친화적인 비즈니스 모델(BM)을 내세우며 선보인 '카트라이더 : 드리프트'는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에서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넥슨 정도의 자금력을 갖춘 회사야 손해 좀 보더라도 좋은 게임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밀어붙일 수 있지만 자금난에 시달리는 게임사는 엄두도 못낼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온라인 게임 과금 체계의 적정선은 어느 수준일까요. 모 대형 게임사도 신작 개발에 있어서 과금 체계 구성을 놓고 내부에서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고 합니다. 대작 게임을 개발했는데 개발비도 회수하지 못할 수준으로 내놓을 수는 없지 않냐. 그렇다고 이용자들의 착한 과금에 대한 목소리를 무시할 수도 없지 않냐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최근 이용자들은 '트럭시위' 등을 거치면서 소비자 권리에 대한 의식도 많이 높아졌습니다. 더이상 게임사들이 무지막지한 과금 구조를 내세워 배짱 장사를 하고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정답은 아직 찾기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어느정도 합의점에는 이르는 것 같습니다. 부분 유료화 아이템, 가챠 시스템이 게임 내 플레이에 영향을 최소화 한다는 점입니다. 한 명의 게임 이용자 입장에서 단순한 치장용 아이템 혹은 편의성 차원에서만 부분 유료화 상품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심리적 저항감이 덜한 것으로 보입니다.
뽑기는 결국 게임 플레이 중 극히 적은 시간을 차지합니다. 플레이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콘텐츠 개발에 힘쓰고 이용자들도 콘텐츠에 대한 만족도와 평가를 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길 빕니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사들도 다양한 과금 체계를 선보이면서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면서 개선점을 계속해서 찾아나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게임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게임사에게 시지프스같은 모습은 필요합니다.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라고 놓아버릴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