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으로부터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즉, '경포대'라고 공격을 받았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 문제였다. 잇따라 대책을 내놓았지만 좀처럼 부동산 가격은 잡히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부의 양극화도 심해졌다. 평등과 진보를 지향하는 대통령으로선 이 상황에 당혹스러워했다. 결국 민심은 떠나갔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그렇지만 돌이켜 여러 숫자들을 살펴보면 노 전 대통령이 '경포대'였나라는 의문이 든다.
국내총생산 및 경제성장률(자료=기획재정부, 한국은행)
우선 경제성장률을 보면 노 대통령 취임 1년차인 2003년에 2.9%였다. 2년차에는 4.9%로 올라갔고 임기말인 2006년과 2007년에는 각각 5.2%, 5.5%에 달했다. 집권 5년간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4.5%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노 대통령의 뒤를 이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재임기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각각 3.2%, 3.0%였다. 이에 비하면 뛰어난 경제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 재임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대에서 유지됐다. 1인당 GDP도 2만 달러를 달성했다.
20년전 얘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 우리 경제상황과 비교하기 위해서다. 만나는 사람마다 못살겠다, 어렵다, 내년이 더 걱정된다 등 경제 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개인들은 물론이고 기업인들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첫해인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6%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펜데믹 시기 풀어놨던 과잉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은 원자잿값, 미국의 대중국 압박 등 여러 악재를 감안하면 그리 나쁜 수준의 성적표는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불안감이 커지게 만든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대비 0.1%포인트 낮춘 1.4%로 제시했다.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3.0%로 상향 조정한 것과 정반대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5%에서 1.3%로 하향 조정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로 전망했다. 기재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4%로 내려잡았다. 한은도 기재부와 같은 수준으로 내다봤다.
이들의 전망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올해 1.3~1.4% 성장률로 뚝 떨어진다. 한은이 이달 초 발표한 우리나라 2분기 경제성장률도 0.6%에 그쳤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수출 부진의 장기화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월간 수출액이 지난해 10월 이후 지난달까지 11개월 연속 감소세다. 특히 대중국 수출이 15개월째 줄고 있다.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 가격이 반등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수출이 어려우면 내수라도 버텨줘야한다. 그렇지만 가계부채가 목에 찰 수준으로 많아진데다 금리까지 올라 가계는 쓸 돈이 없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도 오름세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8월 전년동월대비 3.4% 치솟았다.
내년 전망도 우울하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8곳 중 5곳이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경기 침체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전정부 탓, 세계 경기 탓, 무슨 탓, 무슨 탓 할 수 있다. 그렇게 따지만 노 대통령 시절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글로벌 유동성 때문이었다. 2000대 초반 IT 거품이 꺼지자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급격히 낮춰 경기를 부양하려했다. 그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미국은 물론 전세계 각국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오히려 한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낮았다. 수도 없이 내놓은 부동산 대책의 효과였을 수 있다.
국민은 냉정하다. 얇아진 지갑, 치솟는 물가, 팍팍해진 삶. 고통이 커질 수록 원망은 정부로 향한다. 윤 대통령과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거다.
누가 '경포대'인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