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橫財)는 '뜻밖에 재물을 얻음. 또는 그 재물'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온다. 지난해 정유사와 은행 금융지주사가 횡재를 만났다.
문형민 편집국장
정유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영향으로 뜻밖의 이익을 거뒀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는 각각 3조9989억원, 3조979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에스오일(S-Oil)과 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도 각각 3조4081억원, 2조7898억원에 달했다. 모두 직전년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여기까지는 문제될 게 없다. 기업을 경영하다보면 외부 변수에 의해 횡재를 할 때도 있고 반대 의미의 횡재(橫災)를 당할 수도 있다. 복불복인 세상이다.
그런데 러-우 전쟁이란 같은 이유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폭탄급인 난방비 고지서가 배달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횡재세'를 거둬 난방비 폭탄 피해를 입은 국민들한테 나눠줘야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정유사가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1000%가 넘는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이 더욱 불을 붙였다.
횡재세(windfall tax)는 중세 영국의 벌채 금지에서 비롯된 말이다. 벌채를 금지한 반면 폭풍에 쓰러진 나무를 주워가는 건 허용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폭풍이 지나가면 횡재를 할 수 있었다. 영국 노동당은 1997년 국영기업 민영화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기업에게 횡재세를 내도록 도입했다.
야당이 처음 '횡재세' 얘기를 꺼낼 때만해도 정부와 여당은 반대 입장이었다. 유가 급락으로 정유사가 대규모 적자를 냈을 때 정부가 도와주지 않았으면서 이익을 많이 냈다고 뺏어가는 건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또 횡재세를 도입한 외국과 우리나라 사정은 달랐다. 원유를 시추하는 나라와 달리 우리는 원유를 사와 정제하고, 제품을 생산 판매하기 때문에 원유가 등락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금융지주사의 대규모 이익과 성과급 얘기가 가세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로 공급했던 유동성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금리가 빠르게 큰 폭으로 올랐다. 이로 인해 은행과 금융지주사들이 횡재를 만났다. 은행들도 횡재를 기초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횡재세에 반대하던 대통령이 은행의 이익에 대해선 "공공재적 시스템"이라며 '상생금융'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사실상 입장 변화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익을 늘리고 법에서 규정한대로 세금을 내는 기업은 칭찬해야한다. 뜻밖에 이익 규모가 커졌다고 법을 새로 만들어 세금을 더 거둬가려는 건 옳지 못하다. 이런 법을 만들거면 반대의 경우에도 지원하도록 법에 규정돼야한다. 물론 이런 법은 만들 수 없다. 무한 경쟁을 하는 글로벌 기업과 국가들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기업의 자생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자발적인 사회공헌 확대다. 횡재를 만난 기업이 같은 이유로 횡재(橫災)를 당한 사회에 적정수준의 재물을 환원하면 된다. 직원들을 위한 성과급 잔치에 앞서 기부금 잔치, 사회공헌활동을 했다면 정유사나 은행에 이처럼 따가운 화살이 쏟아졌을까. 2008년 고유가 당시에도 정유사들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 때도 정치권에서 횡재세 부과 얘기가 나왔다. 정유사들은 786억원 규모의 특별기금을 선제적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