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삼성증권)
증권가의 ‘자발적’ 아웃사이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공식이 뼛속까지 새겨진 증권가에서 ‘관리의 삼성’은 어딘가 겉도는 감이 없지 않다. 경쟁사들이 앞다퉈 밀물에서 열심히 노를 저을 때 리스크를 점검하다가 끝내 포기하기도 일쑤. 그런 삼성증권을 향한 시선의 끝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아냥이 들리기도 했다. 과연 삼성증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 ‘재벌집’의 ‘막내아들’, 위기 속 성장기
지난 1992년 삼성그룹이 국제증권을 인수하면서 시작된 삼성증권의 역사는 이제 막 30년을 넘겼다. 당시 업계 20위권 후반이던 국제증권은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중소형사 중 하나.
하지만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입혀지면서 증권가 시선도 확 달라졌다. 국내 최대 ‘재벌집’의 ‘막내아들’로 재탄생한 삼성증권은 전신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고 새롭게 태어난다. 특히 증권에 대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애착’에 힘입어 다양한 인재 영입을 포함한 초기 기반을 수월하게 마련했다.
주식 바닥에 이제 막 발을 들인 삼성에게 금융시장의 위기는 생동감 넘치는 ‘수업’이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와 2000년 카드 사태, 동양 사태 등을 통해 삼성이 얻은 교훈은 안정성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융회사들이 줄도산하는 현장을 목격한 삼성은 브랜드 파워에 보수적 경영전략을 덧씌워 자신만의 색깔을 강화해갔다. 이에 1997년 8위 수준이었던 브로커리지 시장 점유율은 2000년 1위까지 퀀텀 점프에 성공했다.
2001년 당시 황영기 사장은 증권사들이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선버스’ 같은 경영을 보이고 있지만 삼성은 이런 서비스를 벗어나 차별화된 색깔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종합자산관리사로 방향을 튼 뒤 모든 지점의 PB센터화라는 컨셉 아래 프라이빗뱅커(PB)들이 고객자산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등 자산관리부문 서비스 특화에 주력한다.
2010년부터는 3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SNI 서비스를 선보이며 전략을 더욱 고도화했다. 출시 5년 만에 15조원 수준을 기록한 SNI의 고객자산은 2021년 100조원대를 돌파하는 등 현재도 업계 비교 불가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확대된 해외주식 투자시장을 빠르게 선점하면서 수익성도 야무지게 챙겼다. 그동안 삼성증권의 약점으로 꼽혔던 IB부문 역시 조직개편을 통해 인력을 확충하고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구조화금융에서는 가시적 성과들을 잇따라 내놓고 관련 수수료 수익 규모도 꾸준히 확대 중이다.
3분기 기준 인수 및 자문 수수료(전분기 대비 22% 증가)와 구조화금융 수익(24% 증가)이 증가하며 IB가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음을 증명해냈다.
■ 밑거름 삼은 실패, 최대 영업익 달성 목전
2023년 증권가는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폭풍의 중심을 헤쳐나간 해였다. 금리 인상과 부동산 시장 불황으로 충당금을 쌓아올리느라 여념이 없던 증권사(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하나증권)들이 있었는가 하면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로 휘청거리는 곳(미래에셋증권)도 있었다. 오너 리스크, 차액결제거래(CFD) 사태가 잇따라 터지면서 유난히 긴 한해를 보낸 증권사(키움증권)에게도, 라임옵티머스 펀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징계로 인해 최고경영자(CEO)들의 교체 위기를 맞은 증권사(KB증권, NH투자증권)에게는 유례없이 험난했던 1년이다.
경쟁사들이 각종 악재들에 동분서주하는 동안 삼성증권은 꾸준히 안정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정상의 자리에 바짝 다가섰다. ‘도전’보다 ‘안정’을 택한 자에게 늘 2% 아쉬운 성과는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 삼성증권이 올해 경쟁사들을 모두 제치고 업계 최대 영업이익 달성을 앞두고 있다. 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은 8996억원. 이대로라면 업계 최대 이익을 거둔 증권사에 오를 공산이 크다.
삼성증권이 호실적을 거둔 배경은 한마디로 리스크 노출 최소화다. 라임·옵티머스펀드 등 사모펀드 환매 사태에도, 증권업계 고질적 관행으로 불리는 채권 돌려막기 등 관련 이슈 어느 곳에도 삼성증권은 논외로 빠져 있다. 부동산 PF 사업을 진행하되 수도권 중심의 대형건설사가 매입확약한 딜들만 위주로 다루면서 리스크 노출을 최소화했다.
사실 이 같은 확고함에는 앞선 실패의 경험들이 좋은 밑거름이 됐다. 지난 2009년 당시 아시아 톱IB를 선언하며 진출했던 홍콩법인이 불과 2년여만에 대규모 적자만을 남기고 긴급히 철수했던 것은 해외 시장 진출 전략의 부재 등으로 두고두고 아픈 교훈이 됐다. 일찌감치 고객들의 해외 주식투자 시장을 선도하며 공격적 행보를 이어갔던 2014~2015년 후강퉁 투자로 벌어진 고객들의 손실 역시 과도한 투자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뼈에 새기는 계기가 됐다. 2018년 배당사고로 인한 주식을 직원들이 시장에 팔아치우며 혼돈에 빠뜨린 사고는 직원들의 윤리 의식을 재점검하게 했다.
전직 삼성증권 한 관계자는 “그동안의 크고 작은 실패를 통해 삼성 브랜드가 자본시장에서 갖는 특징과 강점, 또 그룹 내 자회사로서의 역할 등에서 갖고 가야 할 정체성 등이 보다 뚜렷해진 측면이 있다”며 “적정선을 찾는 과정에서 경영진의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분위기가 있었지만 최근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 장석훈 체제 종료, 세대교체로 치열해진 시장
실제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은 가장 ‘삼성다운’ 도전에 집중해 성과를 보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장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코로나를 전후로 한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적절히 대응해 성장과 안정을 함께 달성했다는 것이다.
업계 위상이 안정화되자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매각설도 최근 수년간은 자연스럽게 가라앉은 분위기다. 그룹 내 지배구조 변화 등에 따른 변수는 불가피하더라도 ‘1등’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거지던 증권가 입방아는 피하게 된 셈이다.
역대 삼성증권 최장수 CEO로 활약한 장 사장은 내년 3월부로 물러나고 후임으로 박종문 사장이 내정됐다. 공교롭게도 국내 5대 증권사들의 경영진 전원교체가 예상돼 ‘세대교체’를 맞은 증권사의 최상위권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어느새 자본시장 데뷔 30년을 넘긴 삼성증권이 새로운 수장을 맞아 어떤 변화와 도전으로 결실을 이어갈지 관심이 모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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