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알앤디웍스 제공
‘그게 대체 뭐라고, 그깟 그림자 그게 뭐라고’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대가로 한 페터 슐레밀과 그레이맨의 거래가 서사의 중심이 된다. 하지만 작품에서 말하는 그림자는 단순히 빛에 의해 생기는 사물의 검은 그늘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그림자’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그리고 상징적인 의미로 등장한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독일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페터슐레밀은 회색 양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팔고 그 대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게 되지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결국 도시에서 추방당한다. 페터는 정상적인 사회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그림자를 되찾아야 함을 깨닫고, 이 때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다시 나타나 그림자를 되돌려주겠다며 두 번째 거래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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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뮤지컬은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자기기만으로 인한 비인간성을 비판하고 있다. 작품은 얼핏 보면 동화 같은 스토리를 따라간다. 그림자를 판다는 설정 외에도 금은보화가 계속해서 쏟아지는 마법 주머니, 심지어 마지막엔 영혼까지 거래하는 판타지적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실존적이고 사회적인 주제가 담겨 있다.
‘그림자’는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영혼이 아닌 우리가 이 사회에 환대받을지 추방될지를 결정짓는 조건으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그림자’라는 상징을 통해 옳고 그름을 떠나 다수가 소수를 폄하하는 사회, 동질감이 없다는 이유로 서로를 처단하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극중 페터 슐레밀의 고뇌와 결단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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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채우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그림자’다. 제작진은 무대 연출과 조명으로 그림자를 지우고 앙상블 배우들이 그림자 역할을 대신했다. 이 그림자들은 각 도시의 시민이나 귀족으로 등장하고 때로는 그림자나 악마 같은 초월적인 존재들로 무대에 오른다. 단순히 사람과 그림자가 동작을 맞추는 것을 넘어서서 캐릭터가 느끼는 놀람, 두려움 등의 감정이 담긴 격렬한 안무가 인상적이다.
무대 연출부터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까지 흠 잡을 데 없는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유일한 아쉬움은 음향이다. 배우들이 내뱉는 넘버의 가사의 반절 정도만 알아 들어도 제법 선방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사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두 인물이 대립하며 부르는 넘버인데 한 쪽의 대사는 전혀 들리지 않고, 모든 배우들이 함께 부르는 넘버에서도 대충 분위기만 파악해야 하는 수준이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2020년 2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