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현 경제부총리)이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협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2023.3.19(자료=연합뉴스)
다시, 탄핵 정국이다. 4일 오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장과 검사 탄핵을 건너뛰고 곧바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에 돌입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조차 윤 대통령 탈당과 내각 총사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친윤파(친윤석열파)’와 ‘친한파(친한동훈파)’의 갈등은 봉합이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의 정국 인식과 판단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2016년 존재조차 몰랐던 최순실이 국정에 시시콜콜 개입했음을 뒤늦게 알았을 때 국민들은 깊은 실망감을 넘어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다시 이 정도로 분노할 일이 생길까 싶었지만 윤 대통령은 기어이 그 일을 해냈다.
그는 돈키호테처럼 ‘나 홀로’ 정의감에 사로잡혀 협상의 대상을 척결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정적을 뭉뚱그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패악질을 일삼은 만국의 원흉’으로 몰아세웠다. ‘한밤의 소동’으로 치부하기에는 동원된 군인들의 총칼이 너무 무겁고 섬뜩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 몰입한 비서실과 국무위원들의 책임이 크다. ‘버럭 대통령’ 목에 누가 감히 방울을 달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다지만 인사 등 잇속만 챙기고 누릴 것 다 누린 이들의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에도 이를 눈감은 것은 공직자의 기본 자세가 아니다. 저 먼 ‘별나라 대통령’은 아첨꾼들 없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제 영역으로 국한해서 본다면 윤석열 캠프 선대위, 대통령직인수위, 초대 경제부총리를 거쳐 여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추경호 의원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직인수위, 초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거쳐 경제부총리로 영전한 최상목 장관 또한 그에 못지않게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그 누구보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심기 경호에 열중해 왔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금융대통령’으로 불려온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다.
‘계엄의 밤’이 지나고 4일 오전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등 대통령실 참모들의 일괄 사의표명 뉴스가 나온다. 지켜야 할 국민을 총칼을 동원해 겁박했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 탄핵소추 진행 여부와 관계없이 내각 총사퇴도 응당 뒤따라야 할 수순이다.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에서 목숨 걸고 저지하기는커녕 눈치만 보며 입을 다물었다면 뒤늦게라도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국민 상식과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 우리 자식들이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최소한의 조치다.
사족. 탄핵 정국이 재연된 현 시점에 문득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2016년 탄핵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차기 경제부총리로 내정돼 있었지만 성사에 이르지는 못했다. 젊은 세대 표현으로 ‘깊은 빡침’이 있었던 걸까. 그는 이후 관직은 모두 마다하고 민간에 둥지를 틀었다. 결과적으로는 선견지명이 됐다. 돌고 도는 ‘새옹지마’ 인생사에 경외감마저 생긴다. 이것이 개인을 넘어 국가에도 적용되는 것이라면, 비상계엄 위기 또한 ‘전화위복’의 계기이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