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공사 본사 사옥 (사진=연합뉴스)
■ 윤석열 정부의 전력 개편···시작부터 '매각' 중심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 전력산업 개혁을 말하며 ‘공공기관 혁신’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이름만 바뀐 민영화, 그중에서도 ‘팔 수 있는 것부터 팔자’는 자산 매각 중심의 접근이었다.
‘민영화’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발전 자회사 지분 매각, 방송사 지분 매각, 구조조정과 복지 축소는 정부가 실질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했음을 보여준다. 공공성이란 이름 아래 최소한의 역할을 해오던 기관들은 시장 논리에 내맡겨졌고, 한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한전이 지난 1961년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등 3개 회사가 통합돼 설립된 후 꾸준히 등장하는 화두다. 1980년대 초반 ‘민영화’는 국민주 방식의 상장을 뜻했다.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했다.
■ 준경쟁체제 전환했지만 경쟁 안해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효율성 강화를 목표로 발전 부문을 분할하고 경쟁을 도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2001년 한국수력원자력과 5개 발전회사를 한전에서 떼어내 자회사로 설립하고, 전력거래소를 신설하는 등 ‘준경쟁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정작 ‘민영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발전 자회사는 지금까지도 전부 한전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송·배전과 전력 판매는 여전히 독점이다. 명분은 ‘경쟁’이었지만, 현실은 전면 개방도, 공공성 강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노동계 참여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최철호 전력연맹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 50년 넘은 민영화 논의에도 해결 못한 독점 폐해
애초에 한전의 구조 개편 목적은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해결하는 것이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자산을 파는데 더 집중한 모양새다. 지난 2022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통해 본격적인 공공부문 개편에 착수한 정부는 기능, 조직·인력, 예산, 자산, 복리후생의 ‘효율화’를 천명했지만 결국 그 실체는 인력과 복지를 줄이고, 자산을 매각해 민간에 넘기겠다는 계획에 가까웠다.
한전은 정부 방침에 따라 자회사인 한전기술 지분 15%를 매각했다. 한전기술은 원전 설계 부문의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한 한전 자회사다. 한전KDN도 매각 대상에 올랐으나, 전력노조 등의 강한 반발로 중단됐다. 한전KDN은 전산 및 정보통신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노조는 전력 정보시스템의 신뢰성 및 보안성 저해, 정보유출 등의 공공성 저해를 이유로 지분 매각을 강하게 반대했다. YTN은 사실상 민영화됐다. 한전KDN과 한국마사회는 30.95%의 YTN 지분을 보유한 1·4대 주주였으나 정부의 매각 권고 이후 지분 매각에 나섰다.
■ 적자 구조 그대로···개혁 없는 ‘개혁’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국제 에너지 가격 불안정. 이 세 가지가 겹치는 시대에 국가 전력망을 책임지는 한전이 해야 할 일은 투자 확대와 공공성 강화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강구된 민영화가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한전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요금체계에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로 책정돼 있으며, 전체 전력 소비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다. 오랫동안 값싼 전기를 공급해 온 구조에서 누적된 적자는 어떤 자산 매각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공기업의 방만과 비효율은 분명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구조 개편은 목적을 잃은 채 공공재를 공급하는 한전과 그 자회사를 매각과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전력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청사진이 없는 구조 개편 속에서 남은 것은 여전한 부채와 매각 리스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