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을 선고한 4일 서울 중구 지하철 시청역 출입구에서 시민들이 선고 소식을 실은 신문 호외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공공기관, 외주화·자회사 지분 매각 등 사실상 민영화 추진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시장경제의 논리를 앞세우며 ‘작은 정부’와 ‘효율적 운영’을 핵심 국정 철학으로 삼았다. 공공부문은 ‘비대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인식 아래, 민간의 역할을 확대하고 공공기관을 기업처럼 운영하는 데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성’보다는 ‘경쟁력’과 ‘재무 건전성’이 강조됐고, 겉으로는 ‘민영화는 없다’고 했지만 실제 정책의 방향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민영화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이 모든 흐름은 지난 3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사실상 멈췄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금, 그간 추진돼 온 민영화의 실체와 그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공공 부문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로 시작된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에는 민간과 경합하거나 비핵심적인 기능은 규모를 축소하거나 민간에 이양하고, 필요하지 않은 자산 등은 매각하는 방안이 담겼다. 특히 전력·에너지 분야에서 그 흐름은 뚜렷했다. 한국전력은 2023년, 누적 적자가 40조 원을 넘어서면서 긴축 재정의 일환으로 대규모 자산 매각에 나섰다. 여기에는 송배전이나 발전 등 주요 인프라가 아닌 자회사 및 투자 지분의 정리가 포함됐다.
■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 맞춰 전력·에너지 분야 '가속'
한전은 총 27개 출자회사 중 절반가량인 13개사의 지분을 매각 대상으로 지정했다. 해외 석탄 발전 자산을 비롯해 에너지 솔루션·해외투자 법인 등이 포함되며, 일부는 이미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IT 관련 자회사도 매각 후보군에 오르면서 “단기 수익 확보를 위해 미래 에너지 전략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철도공사는 2024년부터 수도권 광역철도 일부 노선 운영에 민간 자본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진행되는 일부 철도사업에서 민간위탁이 시도되고 있다. 정부는 “재정 효율화와 서비스 개선”을 이유로 들었지만, 철도노조 측은 “철도의 민간개방은 안전성과 공공성을 약화시킨다”며 했다.
한국가스공사 또한 LNG 직도입 확대 정책에 맞춰 민간기업의 시장 참여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꾀하고 있다. 가스공사 내부에서는 일부 공급망 외주화 및 자회사 정리 방안이 검토됐고, 실제로 특정 사업부 매각 검토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천연가스 수급 기능이 민간에 넘어갈 경우, 가격 통제력 상실과 위기 대응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3년 11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한전 자구안 관련 지분매각 인력감축 반대'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 정부도 기업도 갈팡질팡···사회적 논의 필요
또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 제정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의료, 교육, 보건, 환경 등 공공성이 핵심인 분야를 민간 산업으로 재편할 수 있는 이 법안은, 13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윤 정부 하에서는 여당이 입법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의료 민영화’ 우려가 커지자 또다시 “의도 없다”는 해명이 뒤따랐지만, 정책의 방향성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많다.
윤석열 정부는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출발해 공공분야를 빠르게 ‘시장화’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성이 배제된 민영화가 결국 국민의 삶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랑 속에서 이 모든 흐름은 일단 멈춘 상태다.
이 때문에 민간기업들과 정부 부처 간 혼선이 불가피해졌고, 공공서비스 현장에서는 ‘갈 방향도, 멈춰 설 기준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에너지, 의료, 방송, 교통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분야에 대한 소유와 운영의 방식에 대해 다시 묻고 결정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