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 관련 포스터/자료=금융위 공식 블로그

2015년 6월 18일, 금융위원회가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100년 가까이 독점해온 기존 은행들에 대한 견제이자 도전이다. 케이뱅크가 2016년 12월, 카카오뱅크가 2017년 4월 본 인가를 받았고, ‘인터넷전문은행’ 시대가 시작됐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짧은 업력에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17년~2023년 사이 인터넷전문은행은 시중은행 및 지방은행보다 훨씬 높은 연평균 55.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21년~2023년 사이에도 인터넷전문은행의 자산 증가율은 시중은행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카카오뱅크는 설립 당시 큰 폭의 적자를 냈지만, 이듬해에 적자폭을 줄였고 2019년 흑자전환했다. 토스뱅크도 2021년 설립 이후 2년간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다 2023년 하반기부터 분기 기준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케이뱅크는 설립 이후 2020년까지 상당한 규모의 적자를 보이다가 영업 5년 차인 2021년에 이르러 흑자전환했다.

뉴노멀이 된 인터넷전문은행

핀테크를 모체로 한 인터넷전문은행의 흥행은 시대적 선택이었다. 핀테크는 산업 전반에 걸쳐 게임 룰을 다시 썼다. 이제는 ‘테크핀’이라 부를 만큼 금융보다 IT가 중심에 놓였다. 디지털 지갑의 부상, QR코드와 전자상거래의 통합, 다양한 결제 플랫폼의 등장은 금융의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시대를 가장 영리하게 이용한 것도 인터넷전문은행들이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앱의 간편한 인터페이스와 빠른 처리 속도로 승부를 걸었다. 철저히 고객 입장에서 앱을 배치했고,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생략했다.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상품을 제시했고 금융 서비스에 대한 진입 장벽을 완전히 낮췄다.

이렇게 카카오뱅크는 출시 12시간 만에 온라인으로만 18만 7000명의 고객을 유치했다. 이들 중 65%는 밀레니얼 세대였다. 카카오뱅크는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홈페이지가 아닌 ‘모바일’을 제1 창구로 정했다. 선견지명이었다.

코로나19는 금융권의 '모바일 퍼스트'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당시 전세계는 '비대면'의 유용성을 깨닫고, 아주 빠르게 습관화했다. 창구 하나 없이도 인터넷전문은행들이 번듯하게 영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셈이다.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세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오픈뱅킹은 기존에 최대 500원까지 들던 이체 수수료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고, 모든 은행 거래를 하나의 앱에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더이상 고객들은 특정 금융사에 종속될 필요가 없어졌다.

마이데이터 제도가 시작된 2022년 1월, 상당수 금융사가 서로 종합금융 플랫폼을 표방하며 나섰지만 핀테크 앱을 넘어서지 못했다. 핀테크 앱들은 초기부터 출혈 마케팅을 지속해 많은 고객을 유지했기에 결과적으로 종합금융 플랫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토스뱅크의 경우, 창의적인 방식으로 마케팅에 전력을 다했다. 지금은 모든 금융앱이 활용하는 ‘1원 송금’이나 ‘매일 이자’ 역시 토스뱅크의 전매특허 상품이다. 토스뱅크는 아이디어의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을만큼 과감하고 개방적이었다. 이렇게 인터넷전문은행들은 금융에 새로운 '디지털 스탠다드'를 제시했고, 이들의 서비스는 업계의 ‘뉴노멀’이 됐다.

원앱, 슈퍼앱...시중은행의 반격

사실 시중은행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구축한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들이 정해놓은 방식으로만 고객을 응대했다. 어려운 업계 용어도 그대로 썼다. 소위 배짱영업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더이상 물리적 지점과 ATM 네트워크 등 전통적인 방식 중심으로 영업을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고객들은 인터넷전문은행 앱을 은행 창구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중은행도 반격에 나선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처음 등장할 당시만 해도 기존 은행 앱과 인터넷전문은행의 앱 사이의 완성도 차이는 상당했다. 고객들에게 직접 비교를 당하자 은행앱들도 빠르게 변화했다.

최근에는 금융앱들의 원앱(One App), 슈퍼앱(Super All) 등의 전략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KB금융그룹은 KB국민은행 앱이었던 KB스타뱅킹을 원앱으로 확장하고 신한금융그룹 역시 신한은행의 SOL을 슈퍼 SOL로 리브랜딩하며 슈퍼앱의 지위를 노리고 있다.

은행들이 돈을 버는 방식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은행들은 그동안 대출 위주 수익 창출 전략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인구 급감과 빠른 고령화 등 국내 경제 환경이 대출 비즈니스에 우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상황이다. 시중 금리도 하락세로 대출의 수익성인 순이자마진도 낮아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따라서 향후 은행들은 수익 창출에서 대출 의존도를 줄이고, 비이자이익 증대, 신탁·자산운용 등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비즈니스 확대, 성장률이 높고 젊은 국가로의 진출 확대 등 근본적인 전략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카카오뱅크가 1분기 실적 발표에서 ‘비이자이익’을 강조하고 베트남과 태국 등 진출에 방점을 둔 것도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토스가 향후 외국인 고객 비율을 50%까지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케이뱅크의 경우 가상자산거래소인 업비트와의 동맹으로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 은행의 해체

이제 모든 은행들이 '뉴노멀'을 탑재하면서 이제는 '인터넷전문'이란 표현조차 과거 유물이 되어버렸다. 금융 소비자들에게는 더이상 '인터넷전문은행'과 '시중은행'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세계적으로 ‘은행’의 정의도 해체되는 분위기다. 이미 은행이 은행의 탈을 벗거나, 은행이 아닌 곳이 은행의 탈을 쓰는 등 융복합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동남아시아에는 택시로 시작한 ‘그랩’이 은행을 대체하고, 중국에서는 ‘알리페이’가 그런 역할을 한다. 증권거래 수수료의 벽을 획기적으로 낮춘 미국의 ‘로빈후드’나 학자금 대출로 시작해 전방위적인 금융 서비스로 도약하고 있는 ‘소피아’도 새로운 유형의 금융이다. 핀테크가 금융 서비스의 카테고리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결국 더 이상 은행의 적은 은행이 아니다. 이제 핀테크 서비스의 경쟁자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모바일 게임 등 '고객의 관심과 시간'을 빼앗아가는 모든 것이다.

현재 은행앱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MAU)’와 같은 고객 이용 수치다. 고객들이 앱에 시도 때도 없이 들락날락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금융앱들이 자잘한 것 하나하나 앱 푸시를 보내는 이유다. 토스의 경우, 금융앱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 상위 10위에 올랐고, 이용자 한명 당 월 평균 앱 실행 횟수는 240회, 사용시간은 2시간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첫발을 뗀 지 10년. 2025년 제4인터넷전문은행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인터넷전문'이란 간판도, '은행'의 역할도 과거 유물이 되어 버린 지금, 인터넷전문은행들은 과연 어떻게 새로운 뉴노멀을 또다시 만들어갈 지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뷰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