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관세 전쟁 유예 후 컨테이너 운임 31.7% 상승

미국과 중국이 지난 4월 전격 합의한 '관세폭탄 유예' 조치가 글로벌 해상물류 시장에 즉각적인 반등 신호를 던졌다. 중국발 수출 물량이 급격히 늘면서 항만과 선 예약률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고, 운임도 팬데믹 이후 가장 뚜렷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수출 중심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 해운업계에도 모처럼 온기가 돌고 있다. 다만 반등의 이면에는 구조적 리스크와 수요 왜곡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번 기회를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3일 상하이해운거래소(SSE)에 따르면 지난 12일 미국과 중국이 양국 간 관세율을 115%포인트(p)씩 낮추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직후 미서안 노선 40피트 컨테이너 운임은 종전 2347달러(9일 기준)에서 3091달러(16일 기준)로 31.7% 상승했다.

글로벌 소비 경기 회복세와 맞물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 주요 수출 대기업들의 2분기 선적 물량이 10~15%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대형 선사들은 미주·유럽 항로에 추가 항차 편성에 나섰고 국적선사 HMM은 유럽 노선에 임시 선박을 긴급 투입했다.

■ 中企 납기 리스크 직면…"계약해도 못 싣는다"

수출 대기 물량은 넘치지만 중소기업들의 선복 확보는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다. 해운정보업체 비지온(Vizion)에 따르면 미중 관세 합의 이후 중국발 미주 노선의 컨테이너 예약은 전주 대비(5709TEU, 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선적 요청은 277% 늘었다. 중소기업엔 스폿 운임(시장 가격)과 후순위 배정이라는 이중고가 작동 중이라 장기계약 기반이 약한 업체일수록 운임 상승분을 감당하기 어렵다.

단가 경쟁력 상실과 납기 차질은 연쇄적인 계약 해지 및 수출 부진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무역업계는 "선복 불안정성이 공급망 전체를 뒤흔드는 리스크로 확대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는 긴급 대응에 착수했다. HMM과 협업해 미주·유럽 노선 중심으로 중소기업에 1000TEU 규모의 선복을 우선 배정하고 할인 운임을 적용하기로 했다. HMM은 6월 중 미동부 항로에 임시 선박도 투입할 예정이다.

중동·중남미 등 대체 시장 공략을 위한 항로 다변화도 추진된다. 그러나 물류업계는 "임시 처방을 넘어선 구조적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며 북미 항로 집중 의존 구조의 리스크를 지적한다.

반짝 특수인가, 체질 개선의 기회인가

해운업계는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지만 일각에선 이번 반등이 단기 특수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관세 유예 조치가 언제든 종료될 수 있다는 점, 물량이 특정 노선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정상적 왜곡 가능성도 상존한다.

90일간의 관세 유예 이후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업계 관계자는 "운임 방어를 위한 일괄 인상, 임시 결항 등 가격 전략이 다시 강화될 것"이라며 장기적 공급망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HMM 민영화, 선사 인프라 투자, ESG 기반 선박 전환 등 오랫동안 미뤄온 과제들이 이번 반등기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며 "반짝 특수로 안주하지 말고, 해운업의 국가전략산업화를 위한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