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 경기도 평택항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교역량의 90%를 수송하는 해운산업이 다시 격랑에 빠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힘겹게 회복세를 타던 해운업계는 미중 무역분쟁, 보호무역주의, 물동량 급변, 운임 폭등·폭락, 그리고 지정학적 위기에 시달려왔다. 특히 최근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관세정책의 급격한 전환은 해운시장에 새로운 파장을 예고한다.

물류 주권의 역사, 그리고 흔들림의 시작

한국 해운산업은 1970년대 중동 건설 붐과 1980~90년대 수출산업 고도화의 흐름 속에서 성장했다. 국적선사는 한강의 기적을 바다에서 뒷받침했고, 국적선대는 세계적 규모로 팽창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세계 해운업은 급격한 공급과잉, 운임 하락, 유동성 부족이라는 3중고에 시달렸다.

미국 정부는 최근, 중국 해운·조선을 겨냥한 항만수수료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만이 아니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건조된 자동차운반선(PCTC)도 포함됐다.
현대글로비스, 유코카캐리어스 등 국내 선사들은 미국 항만에 입항할 때마다 수수료 부담이 늘어난다. 한-미 FTA 체계 안에서 전례 없는 조치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자국 조선산업 보호 명분으로 한국 해운까지 견제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수출산업의 숨은 동맥 ‘해운’

한국은 전략물자의 대부분을 바다로 들여온다. 원유 99.6%, 천연가스 96.9%, 철광석·석탄 100%를 수입에 의존하는데 이들은 해상수송 없이 들어올 수 없다. 게다가 해운은 수출입 화물의 운송은 물론, 3국간 물류 서비스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서비스 수출산업이다. 컨테이너선 하나가 막히면, 공장이 멈추고, 수출이 지연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해운사들이 쓰러졌다.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MOL, NYK, K-Line 등 3대 선사는 정부와 화주, 금융기관이 함께 짠 ‘장기운송계약’ 기반 생태계로 버텼다. 개발은행의 선박금융, 화주의 적화보증, 선사의 저비용 선박확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정부 주도형 해운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다. 그 결과, 일본 해운업계는 고정 물량 확보, 리스크 분산, 선박 확충이라는 3박자를 안정적으로 맞추며 자국 해운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해운산업, 회복 넘어 진화해야

국제 해운시장은 전 세계 교역량의 90% 이상을 운송하는 핵심 인프라다. 완전경쟁에 가까운 시장구조, 연합체 중심의 경쟁, 원가절감 중심의 비즈니스 환경은 전략적 접근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구조에 맞서고 있다. 해운을 시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해운산업은 단순히 회복을 넘어, 재편과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