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시작된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분쟁이 1년을 넘어섰다. 법정, 주주총회, 공개매수장을 오가며 맞붙은 양측은 소송 24건, 6조원대 공개매수전, 부채 급등과 실적 엇갈림이라는 ‘숫자’의 기록을 남겼다.
■ 66→75→83→89···6조원 쏟아부은 공개매수
분쟁은 지난해 9월 13일 영풍이 MBK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를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영풍·MBK 연합은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를 통해 주당 66만원, 최대 1조9900억원 규모의 공개매수에 나섰다.
이후 가격을 75만원, 83만원으로 끌어올리며 총 2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이에 맞서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89만원까지 높이며 3조7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치열한 맞불 속에 고려아연 주가는 한때 240만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상반기만 민형사 소송·가처분·주총 결의 무효 청구가 14건 접수됐고, 판결·결정 난 사건은 15건이다. 소송가액은 13억8072만원에 달한다. 영풍 측이 제기한 신주발행무효 소송 항소심 등 주요 사건이 진행 중이어서 내년 정기 주총 전까지 법정 다툼은 이어질 전망이다.
■ 흔들린 재무···충차입금 5배 증가, 적자폭 3배 증가
분쟁 와중에도 고려아연은 실적 호조를 이어갔다. 2025년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7조6582억 원, 영업이익 5300억원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안티모니 판매액이 1614억 원으로 1년 새 5배 급증하는 등 신성장 동력도 부상했다.
하지만 재무 건전성은 흔들렸다. 총차입금이 7329억 원에서 3조7454억원으로 1년 만에 5배 넘게 늘었고, 부채비율도 22.5%에서 69.2%로 급등했다.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자금 부담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영풍은 2025년 상반기 매출 1조1717억원으로 전년 대비 21.5% 줄었고, 영업손실은 1504억원으로 적자 폭이 3배 이상 커졌다. 2023년부터 3년 연속 영업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폐수 유출로 석포제련소가 58일간 조업정지를 당하며 가동률은 39.4%로 추락했다. IMF 외환위기 때도 90% 이상이던 가동률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지며 아연괴 생산량도 40% 감소했다.
■ 끝나지 않은 승부, 버티기가 관건
영풍·MBK 연합은 지분율을 앞세워 이사회 장악을 시도했지만 고려아연은 순환출자 구조를 활용해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내년 정기 주총과 항소심 결과에 따라 판세는 다시 뒤집힐 수 있다. “누가 이길까”보다 “누가 더 오래 버틸까”가 이번 숫자 전쟁의 진짜 승부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