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소 야간 경관조명 (사진=포스코)
■ 성공한 민영화의 그림자
포스코는 한때 ‘성공한 민영화’의 표본이었다. 2000년대 초반, 민영화 직후 경영실적이 크게 개선되며 안정적 성장을 이어갔지만 지금의 포스코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는 ‘소유분산’ 구조다. 국민연금, 블랙록, 얼라이언스번스타인 등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이 분산되면서 사실상 실질적 오너가 사라졌다. 한 세대 이상을 내다보며 장기 경영을 할 재벌 총수와 달리, 임기 제한이 있는 전문 경영인은 당장의 실적과 배당 눈치에 매몰되기 쉽다. 설비투자를 미루고 과도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장기 성장성을 희생하는 일도 잦다.
포스코를 발목 잡는 또 다른 문제는 이사회와 사외이사다. CEO의 셀프추천, 셀프선임 등을 막기 위해 독립성을 강화한 사외이사는 오히려 폐해로 돌아왔다. 현직 사외이사가 차기 회장 후보와 사외이사 후보 추천권을 쥐고 있어 ‘세습’과 ‘궁합 맞추기’가 가능하다.
■ 사외이사 권한 강화의 함정···완성된 그들만의 리그
사외이사는 차기 회장 후보 추천 권한이 있고, 임기 만료를 앞두면 회장의 눈치를 보게 된다. 회장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외이사단을 물갈이하고, 서로의 임기와 대우를 보장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 지난해 최정우 전 회장과 사외이사의 호화 해외출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차기 회장 선출을 앞두고 캐나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전세기와 전세 헬기, 미슐랭 레스토랑 등을 이용하며 7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쓰며 논란이 됐다.
특정 사외이사의 임기가 끝났을 때 새 사외이사를 뽑는 권한도 현직 사외이사가 갖는다. 5명의 외부 인사로 짜인 ‘사외이사 후보 추천자문단’이 사외이사 후보 5명을 올리면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 후보 추천위원회’가 최종 후보 1명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 외부 자문단마저 사외이사들이 추천·임명한다.
포스코는 민간기업임을 강조하지만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연임에 성공한 회장도 정권이 바뀌면 자의 반 타의 반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반복됐다. 최근에는 건진법사 전성배 씨의 불법 인사 개입 의혹이 불거졌고 대통령 해외 순방 기업인단에서 제외돼 새 정부와의 교감 역시 미지수다. 아직 정권 초기로 패싱으로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미국발 50% 철강 관세 확대라는 외환(外患)에 잇따른 산재 사고라는 내우(內憂)가 겹쳐 어려운 상황이다.
■ 정치권의 입김에도 ‘흔들’···외면 당한 포스코의 위험한 빈자리
장인화 회장은 취임 직후 회장후보군 관리위원회를 신설하며 지배구조 개선에 착수했다.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내부·외부 후보를 상시 발굴하고 육성하는 구조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기업가 정신의 부재와 리더십 불안을 메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포스코는 단일 기업을 넘어 한국 산업화의 상징이자 국가 경쟁력의 바로미터다. 전신인 포항종합제철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제공된 대일 청구권 유·무상 자금 중 가장 많은 1억1948만 달러를 사용해 설립됐다.
이 자금을 모두 상환한 성장사는 한국 산업의 비약적 발전과 궤를 함께한다. 설립 당시 박태준 창업회장이 강조한 ‘피값’은 아직 식지 않았고, 위안부의 눈물 위에 세운 역사적 배경은 철강의 무게보다 무겁다. 포스코가 다시 안전과 리더십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 균열은 포스코 내부에 머물지 않고 한국 산업 전체로 번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