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연강판 (사진=현대제철)
■ 수출 중심 지원책에 내수형 중소사 소외
정부의 철강산업 지원책이 본격화됐지만 중소 철강사들은 여전히 체감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크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촉진과 해외 인증·물류비 지원이 주를 이루면서 내수 시장에 뿌리내린 지역 기반 철강업체들은 지원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까지 대폭 강화되면서 설비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업체들은 ‘이중고’에 빠지고 있다.
정부의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수출 보증 및 보험 확대 ▲해외 인증·인허가 지원 ▲친환경·고부가 제품 전환 금융지원 등 대부분의 지원 항목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형 제강사나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수 중심의 중소형 철강사는 수출 관련 실적이 거의 없어 지원 요건조차 충족하기 어렵다.
특히 지역 중소 철강업계는 수요 둔화와 원가 부담, 탈탄소 압박이 겹치며 가동률이 50~60%대로 떨어진 상태다. 건설·제조 현장의 발주가 줄면서 내수 물량이 급감한 데다 납품 단가가 수년째 제자리여서 감산 외엔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 한 중부권 철근 제조업체 대표는 “정부가 해외 물류비를 도와준다고 하지만 우리는 수출을 안 한다”며 “오히려 내수 침체로 재고가 쌓이고, 탄소감축 목표까지 강화돼 설비투자 압박만 커졌다”고 토로했다.
■ 2035 NDC 60% 감축안…철강업계 “공장 멈추라는 말”
이런 가운데 6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공개한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후보안은 산업계 전반에 또 한 번의 충격을 줬다. 정부는 이날 공청회에서 2018년 대비 50~60% 또는 53~60% 감축 범위를 제시했다. 2030년 목표(40%)보다 훨씬 강화된 역대 최고 수준의 감축안으로, 사실상 모든 산업 부문에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2035년까지 수소환원제철로 최소 150만t 감축’ 목표는 기술 상용화 시점과 맞지 않는다”며 “수소환원제철은 2037년 전후 상용화가 예상되는데, 그 이전에 48% 감축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인위적 생산 감축 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이는 곧 공장 가동을 멈추라는 말과 같다”고 비판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철강사 두 곳의 배출권 추가 수요는 2026~2030년 5141만t에 달한다. 배출권 단가가 5만원으로 오를 경우 부담액은 2조5700억원 규모에 이른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배출권 거래제 강화와 감축 목표 상향이 맞물리면 내년부터 원가 부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중소·지역업체 지원 위한 2단계 대책 필요
현장에서는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구조전환 자금, 탄소저감 설비 교체를 위한 중소 전용 금융지원 등 현실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RE100, CBAM 대응 등 탈탄소 전환 정책도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중소업체는 이행 부담만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철강 대책이 수출 중심 산업정책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다. 국내 수요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수출 지원만으로는 산업 체질을 바꾸기 어렵다. 내수 구조조정, 탄소중립 대응, 지역산업 회생을 함께 묶은 2단계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