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그룹노동조합연대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철강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의 보호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포스코그룹노동조합연대)
정부가 공급 과잉과 수요절벽에 빠진 철강산업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범용재 중심의 설비 축소와 저탄소 전환을 골자로 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내놓고 중소·중견 철강사의 수출 보증과 특수강 전환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는 “전기로 확대만 강조할 뿐 전기요금 부담 완화 등 현실적 대책은 빠졌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 공급 과잉 구조에 ‘범용재 감산’ 카드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경제관계장관회의 및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철근·형강·강판 등 범용재 중심의 생산능력이 과잉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 기업의 자율적 감산과 설비 축소를 유도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철근은 수입재 침투율이 3%에 불과하지만 설비가 과잉된 대표 품목으로 꼽힌다. 정부는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 설비 조정에 나설 경우 세제·금융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등 지역 지원책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 고부가·저탄소 전환…“비용 현실 반영해야”
정부는 특수강·전기강판 등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철강의 질적 전환’을 추진한다. 열연강판이 톤당 80만원대인 반면, 고망간강은 400만원대, 전기강판은 200만원대에 거래된다. 산업부는 2030년까지 10개 특수탄소강 분야에 2000억원의 연구개발(R&D)을 투입, 특수강 비중을 현재 12%에서 2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 205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추진, 기존 고로 11기를 수소환원제철 15기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6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이 그 출발점이다.
그러나 정작 업계는 “대책이 한 발 늦었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한 철근의 경우 국내 1, 2위인 동국제강과 현대제철이 이미 근로시간 단축과 공장 가동 조정 등 자구책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쌓여 있는 철강 제품들 (사진=연합뉴스)
■ 글로벌 전환 속 뒤처진 현실
감산 압박과 전환투자가 동시에 요구되는 국면에서 전기로 확대만 앞세운 정책이 현장의 비용 구조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주요국은 전기로 전환과 전력비 보조를 병행하고 있다. 일본은 탄소 감축 실적에 따라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저탄소 요율제’를 검토 중이며 유럽연합(EU)은 그린딜 정책의 일환으로 전기로 설비 투자와 에너지 비용을 보조한다. 반면 한국은 전력 요금체계 개편 논의가 지연되면서 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82.7원으로 3년 전(105.5원)보다 73% 상승했다. 동국제강과 세아제강, 대한제강 등 주요 전기로 업체들은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야간 조업에 나서고 있다. 한 제강사 관계자는 “야간 전력요금이 낮다고는 하지만, 하루 24시간 설비를 돌려도 인건비와 전기료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말하는 ‘친환경 전환’은 결국 조업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포스코노조는 대책이 발표된 4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 기술전환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김성호 포스코노조 위원장은 “정부 대책에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완화나 전기요금 인하 등 실질적 지원이 빠져 있다”며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현장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정부 “구조적 위기 선제 대응”…업계 “체감효과 없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철강산업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수출 주력 산업인 철강이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며 “이번 대책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보강하고 산업 생태계를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선 “정책 방향은 옳지만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강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없는 만큼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는 뜻은 이해하지만 현실적 지원이 수반되지 않으면 감산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과잉 해소와 친환경 전환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한국 철강산업은 구조적 갈림길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