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본점이 '스위트 홀리데이'로 꾸며져 있다. (사진=내미림 기자)
#. 도심의 불빛이 다시 경쟁을 시작했다. 11월 초, 서울 도심의 공기가 한층 밝아졌다. 해가 지자 백화점 외벽마다 불빛이 일제히 켜지고 거리엔 캐럴이 흐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자 백화점 3사는 올해도 도심의 ‘연말 성지’로 돌아왔다. 롯데백화점은 환상 콘셉트의 ‘스위트 홀리데이’, 신세계백화점은 클래식 무드의 미디어파사드, 현대백화점은 감성 테마의 ‘크리스마스 공방’으로 각기 색을 뚜렷이 했다. 단순 점등을 넘어 머무는 시간을 설계한 점이 공통분모다. 사전예약과 정교한 동선, F&B·굿즈 결합, 공연형 미디어 연출을 앞세워 체류를 유도하고 경험을 매출로 잇는 전략을 전면에 배치했다.
세 백화점이 매년 크리스마스 명소로 자리 잡아 온 건 사실이지만 2025년의 차이는 완성도와 선(先)온라인 개막에 있다. 체험·음악·미디어파사드·동선 연출을 결합한 ‘체류형 경험’이 한층 고도화됐고 예약제 운영과 굿즈·F&B의 연계 판매가 촘촘해졌다. 동시에 각사 공식 인스타그램·유튜브를 통한 티저 공개와 실시간 공유가 강화되며 현장 점등 이전에 피드에서 먼저 관심과 방문 의사를 끌어내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3사는 순차적으로 크리스마스 연출을 개시했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곳은 롯데백화점이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스위트 홀리데이’는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나탈리 레테(Nathalie Lété)와 협업해 완성한 테마로 서울 본점과 잠실점 외벽에 3만여 개 LED를 활용한 ‘롯데타운 크리스마스 파사드’를 선보였다. 올해는 본관뿐 아니라 에비뉴엘까지 조명 연출을 확장해 명동 일대 전체를 하나의 ‘빛의 거리’로 바꿨다.
이달 말에는 잠실 잔디광장에서 ‘유럽 정통 크리스마스 마켓의 재현’을 모티브로 한 ‘롯데타운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린다. 지난 2023년 시작된 이 행사는 올해 먹거리·볼거리·즐길 거리 규모를 대폭 확장하며 수도권 최대 규모 마켓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신세계백화점은 7일 명동 본점 외벽을 대형 미디어파사드 무대로 변신시킨다. 뮤지컬 형식의 영상 콘텐츠 ‘뮤지컬 원더랜드(Musical Wonderland)’는 시그니처 캐릭터 ‘푸빌라(Poobila)’가 ‘시간을 잇는 마법의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금빛 불빛 속에서 거대한 선물상자가 열리고 불꽃이 터지는 장면은 도심 한복판을 무대로 바꾸며 관객이 한 편의 공연에 초대된 듯한 몰입감을 준다. 올해는 영상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스크린 크기를 지난해보다 61㎡ 이상 확장, 총 1353㎡(농구장 세 개 크기)에 달하는 대형 사이니지로 완성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1일 더현대서울 5층 ‘사운즈 포레스트’에 ‘해리의 크리스마스 공방(Atelier de Noël)’을 열었다. 시그니처 캐릭터 ‘해리’가 산타를 대신해 선물을 준비한다는 설정으로 ‘산타의 집–편지공방–선물공방–포장공방–루돌프의 집’으로 이어지는 다섯 공간을 체험형 동화 동선으로 구성했다. 내부에는 편지를 날리는 부엉이 오브제와 선물을 싣고 달리는 미니 기차, 전 세계 마을을 형상화한 디오라마가 설치돼 있다. 더현대서울 H빌리지 관람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지난달 23일 진행된 1차 네이버 예약에는 동시 접속자 4만5000명이 몰려 30분 만에 마감됐다. 매년 수십만 명이 찾는 이 공간은 ‘인증샷 성지’로 자리 잡으며 오프라인 쇼핑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차별화된 연출이 매출로 직결되는 시대”라며 “백화점이 조명보다 감정, 판매보다 경험에 집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백화점 3社, SNS로 확장된 크리스마스 무드
더현대서울 5층 ‘사운즈 포레스트’에 ‘해리의 크리스마스 공방이 포토존으로 꾸며져있다.
(사진=내미림 기자)
이번 크리스마스 캠페인은 오프라인 공간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공식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뮤지컬 원더랜드’ 티저 영상을 사전 공개하며 시청자 참여를 유도했다. 강남점 ‘하우스 오브 신세계’와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 역시 LED 장식과 초대형 트리 설치 현장을 SNS로 실시간 공유했다. 롯데백화점은 인스타그램에 ‘Sweet Holidays in LOTTE TOWN’ 캠페인 영상을 게재하고 본점 외벽 조명 전경과 마켓 현장 스케치를 짧은 릴스(Reels)로 공개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더현대서울’ 공식 계정을 통해 ‘해리의 크리스마스 공방’ 콘셉트 영상과 포토존 디테일을 담은 콘텐츠를 선보이며 방문객 참여형 해시태그 이벤트를 병행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먼저 체험한 감성이 오프라인 방문으로 이어지도록 SNS를 주요 소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백화점 3사는 오프라인 무드 조성에 그치지 않고 SNS 채널을 통해 ‘디지털 점등식’을 먼저 열며 크리스마스 경험을 피드 속으로 확장하고 있다.
■ ‘인증샷 경제’의 한복판에 선 백화점 3사
세 백화점의 공통점은 ‘조명보다 감정’이었다. 고객이 머물고 체험하고 사진을 남기는 시간이 곧 브랜드 경험으로 환산된다. 코로나19 이후 보복 소비가 끝나자 이제는 ‘분위기’가 소비의 중심이 됐다. SNS 속 인증샷은 새로운 매출 통로가 되고 체류 시간은 곧 판매로 이어진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증샷 명소’가 매출을 이끄는 현상이 뚜렷하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공유되는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테마 이미지는 방문을 유도하며 ‘피드 속 감정’이 소비의 동기로 작용한다. 롯데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감성으로, 신세계는 화려한 영상으로, 현대는 체험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을 설계했다.
올해는 특히 체류형 콘텐츠의 완성도와 SNS 확산 속도에서 이전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지난 2023~2024년까지만 해도 조명 점등과 포토존 중심의 단순 ‘연출형 전시’가 주를 이뤘다면 2025년에는 예약·참여·굿즈·음악 등 오감 체험이 결합된 ‘몰입형 콘텐츠’로 진화했다. 동시에 각사 공식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한 사전 홍보, 실시간 공유 전략이 강화되면서 크리스마스의 오프닝은 ‘현장’보다 ‘피드’에서 먼저 시작됐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공간에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가 유통업계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며 “매출은 이제 매장보다 피드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쇼핑이 경험으로 경험이 콘텐츠로 이어지는 시대에 백화점은 더 이상 단순한 판매장이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구현하는 무대로 진화하고 있다”라며 “결국 누가 더 설득력 있는 장면을 만들어내느냐가 올해 연말 소비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