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상품 매대가 아닌 가챠머신 벽이다. ‘체험이 먼저, 쇼핑은 그다음’이라는 뉴웨이브 콘셉트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사진=내미림 기자)

#. 서울 명동역 9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낯익은 편의점 간판 뒤 외관부터 크기가 남다른 이색 편의점이 눈에 들어온다. 110평 규모가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서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냉장고도 계산대도 아닌 ‘가챠(랜덤뽑기)존’. 밝은 조명 아래 동전을 넣어 돌리면 장난감이 나오는 캡슐 뽑기 기계를 전면에 배치해 방문객 발걸음을 붙잡는다.

지난 10월26일 문을 연 세븐일레븐 뉴웨이브 플러스 명동점의 모습이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10월 선보인 차세대 콘셉트 가맹 모델 뉴웨이브의 6번째 매장이자, 한단계 진화된 뉴웨이브 플러스 모델을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동에 선보였다. 뉴웨이브 매장은 지난해 처음 도입된 ‘차세대 콘셉트 점포 모델’로 단순 판매 중심 편의점에서 벗어나 공간·체험·콘텐츠를 결합한 플랫폼형 편의점을 목표로 한다.

이 같은 형태의 편의점은 세븐일레븐이 최초다. 공개 첫해 3개점을 시작해 올해만 3개점을 추가, 1년만에 6개 점포가 문을 열만큼 세븐일레븐의 야심작이기도 하다. 실제 1년간 운영된 초기 뉴웨이브 점포들은 일반 점포 대비 높은 매출로 세븐일레븐의 노력에 화답했다. 특히 푸드·신선식품·패션·뷰티 등 핵심 카테고리에서 최소 2배에서 최대 15배까지 매출이 증가했다. 고객 체류 시간 역시 늘면서 ‘잠깐 들르는 곳’이던 편의점이 ‘일부러 찾아가는 장소’로 개념이 바뀌었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 최근 선보인 업그레이드 버전의 세븐일레븐 뉴웨이브 플러스 명동점은 체험 가능한 콘테츠들로 가득했다. 가챠존을 지나 매장 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캐릭터 조형물과 라면 오브제, 사진 포인트까지 갖춘 ‘체험형 라면 존’인 ‘너구리의 라면가게’가 등장했다. 라면을 끓이기 전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은 뒤 SNS에 올리고 나서야 자리에 앉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라면존 옆에는 또 한 번의 가챠 체험을 위한 ‘두 번째 가챠존’이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서 첫 경험을 제공했다면, 이곳은 라면을 끓이면서 보이는 장소에 위치해 있어 다시 한 번 뽑는 재미를 반복시킨다. 동전을 넣고 ‘돌리는 순간’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줄을 섰고 최근 유행인 ‘뽑파민(뽑기+도파민)’ 소비를 그대로 옮겨놓은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 명동이라는 상권, 그리고 ‘외국인 70%’가 만든 풍경

세븐일레븐 뉴웨이브 명동점에 마련된 ‘너구리의 라면가게’ 체험존. (사진=내미림 기자)

이곳을 찾는 고객 중 약 70%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그래서일까, ‘K-기념품존’은 사실상 또 다른 기념품 숍이었다. 라면, 과자, 홍삼, 믹스커피, 떡볶이 등 한국을 상징하는 식품과 소품이 빼곡했다. 옆에 설치된 ‘K-이벤트존’에서는 교통카드 커스터마이징, 즉석 사진 프린팅 등 ‘여행 도중 꼭 하고 싶은 경험’이 묶여 있었다. 여행객들이 자연스럽게 머물고 체류하며 소비하는 구조다. 편의점이라 생각하고 들어왔다가 20분 이상 머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높은 상권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공간이다.

20대 일본인 여성 관광객은 “명동에 오면 늘 화장품 매장만 갔는데 여긴 놀러 온 느낌”이라며 “편의점 안에 또 다른 ‘여행 코스’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 분위기는 ‘느낌’만이 아니었다. 오픈 이후 약 2주간의 매출 변화는 꽤 극적이다. 라면 22배, 완구 20배, 뷰티 7배, 즉석식품 5배 증가. 도시락·김밥 등 편의점 본류도 5배 성장했다. 단순히 화려한 공간이 아니라 실제 ‘돈이 움직이는 구조’라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편의점이 단순 판매점이 아니라 여행의 일부, 하나의 경험 목적지로 기능하는 장면이 그대로 포착됐다. 이곳을 나서는 손님들 대부분은 쇼핑백과 사진, 그리고 ‘한국에서 재밌는 곳 하나 더 발견했다’는 만족감을 함께 들고 나갔다.

■ 포화된 편의점 시장, 질적 성장으로 돌파

세븐일레븐은 뉴웨이브 매장의 차별화된 콘텐츠로 실적 반전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실제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442억원으로 여전히 적자지만 젼년 동기 대비 손실 규모를 23.4% 줄이며 뚜렷한 개선세를 보였다. 특히 3분기만 놓고 보면 영업손실은 1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 급감했다. 비효율 점포정리와 조직슬림화, 뉴웨이브 매장 출점 등 내실 경영의 효과가 숫자로 입증된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뉴웨이브를 단발성 실험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각오다. 명동을 기점으로 주요 상권과 관광 거점을 중심으로 모델을 확장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은 대표 플래그십 역할까지 고려하는 ‘전략 자산’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편의점의 근간인 푸드는 물론, 패션·뷰티 등 신흥 카테고리까지 상권 분석 기반의 맞춤형 상품 구성과 현대적 감성의 공간 디자인을 결합해 영(Young)하고 트렌디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가맹점 경쟁력까지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지난 8월에는 서울 지역 대표적인 주택·학원가 밀집 상권 중 하나인 중계동 은행 사거리 인근에 '뉴웨이브 중계점'을 열었다. 뉴웨이브 중계점은 기존에 사무실, 문화·유흥, 관광 상권 중심이었던 '뉴웨이브' 점포를 완전한 생활형 상권에 도입한 첫 사례였다. 뉴웨이브 점포가 철저한 상권 맞춤 상품 기획과 구역 설정을 특징으로 하는 만큼 뉴웨이브 중계점에도 이를 반영했다.

특히 학원가를 이용하는 학생들의 식품, 즉석식품 이용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돼 시식 공간을 한 벽면 전체에 길게 구성해 일반 점포 평균치 대비 2배 정도 넓혔다. 계산대 공간도 40% 정도 확대해 푸드코트형인 '푸드스테이션'을 조성하고 치킨, 피자, 구슬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즉석식품을 준비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뉴웨이브는 단순 플래그십 매장이 아니라 앞으로 편의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 플랫폼”이라며 “내·외국인을 모두 아우르는 생활밀착형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계속 진화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