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방송화면 캡처
‘루왁인간’이 중년 가장의 무거운 현실을 신박한 설정 안에 독특하게 녹여내며 호평을 받았다. 안내상의 열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부터 김미수라는 새 신인의 발견까지, 단막극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준 좋은 사례가 됐다.
30일 오후 방송된 ‘루왁인간’은 은퇴 위기에 처한 50대의 고졸 세일즈맨 정차식(안내상 분)을 통해 우리네 가장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드라마다. 원두를 수입하려다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된 정차식이 하루아침에 커피 생두를 낳는 ‘루왁인간’으로 변하며 펼쳐지는 기적을 다뤘다.
커피 체리를 먹은 뒤 화장실을 가게 되면, 질 좋은 생두를 낳을 수 있다는 신선한 발상이 어떻게 다뤄질지 궁금증을 모았었다.
이에 ‘루왁인간’은 50대 가장 정차식이 상사에게는 구박받고, 후배들에게는 ‘꼰대’ 취급을 받으며 소외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그려내며 현실적 배경을 마련한다. 대출을 받아 카페를 차린 딸이나 이가 아파도 돈 때문에 쉽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가족들을 보며 마음 아파하는, 벼랑 끝에 몰릴 대로 몰린 정차식의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이 특별한 기적은 탄탄한 공감 위에서 큰 무리 없이 납득을 하게 된다.
평생 회사와 가족을 위해 책임을 다하다가 퇴직을 권유받고, 대장암에 걸리는 서글픈 가장이지만, 정차식의 ‘특별한’ 대장에 빗대어 전달한 현실은 크게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독특한 설정이 주는 유쾌함이 주제의 무거움을 상쇄시키며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한 것이다.
미니 시리즈라면 쉽게 하지 못했을 과감한 시도였다. 개연성을 따지고 들면 다소 어설플 수 있었지만, 열심히 산 이에게 주는 따뜻한 응원과 위로라는 메시지가 명확했기 때문에 여운을 전할 수 있었다. 신박한 설정을 통해 보편적인 이야기를 흥미 있게, 또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었다.
그동안 긴 호흡의 연기를 보여줄 기회는 드물었던 안내상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드라마, 영화, 연극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맹활약 중인 안내상이지만, 주로 조연으로 활약한 탓에 긴 호흡의 연기를 접하기 쉽지는 않았다. 신스틸러로 활약하며 남긴 명장면들도 물론 있었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감정을 차근차근 쌓아가며 더욱 폭발력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사진=JTBC 방송화면 캡처
안내상은 때로는 후배들의 무시가 서럽지만,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을 되새기며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가장의 무게를 섬세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냈다. 후배들의 험담을 들으면서 느끼는 속상함을 씁쓸한 미소 하나만으로 표현하는 하면, 감정 표현이 익숙하지 않아 씁쓸한 가장의 복합적인 속내를 깊이 있게 표현해 사실감을 높이기도 했다. 묵묵히 희생하다 억울함을 폭발시키는 장면에서는 축적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내며 클라이맥스를 완벽하게 장식했다.
새로운 신인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정차식의 딸이자 창업에 도전한 청년 지현을 연기한 김미수의 안정적인 연기도 돋보였다.
정차식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만큼, 큰 분량을 차지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출금 갚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도리만은 지키고자 굳은 결심을 하는 건실한 청년의 모습부터 고생하는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 등 쉽지 않은 감정들을 편안하게 연기해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가족에게 민망한 듯 선물을 건네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이나 양심과 돈 사이에서 갈등하는 짧은 장면들을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며 진짜 현실 속 아빠와 딸 같은 편안한 호흡을 보여줬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크고 라인업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루왁인간’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네 현실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중년 배우부터 신인까지, 배우들의 새로운 얼굴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젊은 연출, 작가들의 유니크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선보이는 JTBC 단막극 프로그램 드라마 페스타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게 한 ‘루왁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