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책표지)
자신을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라고 말하는 시인 장석주가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로 인생을 이야기한다. 장서가 답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들에 담긴 문장들과 함께 사유를 전한다. 셰익스피어와 몽테뉴, 오스카 와일드에서부터 카뮈, 김훈, 김연수까지 여러 철학자와 작가의 문장들이 장석주의 문장과 만나 장석주의, 혹은 우리의 인생을 노래한다.
““어때요? 살 만했나요?” 누군가 인생의 맛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테다. 혼자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겠지. 인생이란 아주 씁쓸한 것만도, 그렇다고 달콤한 것만도 아니었지만,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생의 맛이 고작 어제 남긴 식어버린 카레를 무심히 떠서 먹는 맛이라도 말이다.”
“정오가 불꽃을 짠다던 발레리의 시구 같은 젊음의 시간은 저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젊지 않다. 젊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되고, 나는 지독한 자폐감에 감싸인 채 밤을 맞는다.(…)고적하게 보낸 그 많은 시골의 저녁들, 그 시각 나는 감히 빛을 탕진해버린 고독의 제왕이었다. 나는 떠나지도 못하고 머물지도 못하리라. 내겐 어디로 떠날 여비가 한푼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내 여비는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초여름 마당에 내리는 빛, 흰 꽃봉오리를 막 열어젖트린 수련의 꽃잎 위에 머물던 빛, 배롱나무 가지마다 만개한 붉은 꽃을 부드럽게 감싸던 늦여름의 빛, 어디에 나 하얀 화염으로 거침없이 타오르던 염천의 빛, 빛, 빛, 빛들.”
산문집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에는 장석주가 살아 온 인생의 한 시기와 지나간 시간들, 그리고 일상에서 사유한 조촐한 소회가 담겨 있다. 인생의 활력이 샘솟을 때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인생의 절반쯤 다다랐을 때 피어나는 이야기도 있다. 또,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뚜벅뚜벅 걸어온 한 시절을 돌아보며 풀어내는 이야기도 있다. 장석주는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익숙한 길을 걸어보며 떠오른 생각들을 풀어내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 여행자로서 낯선 풍경에서 쉬어가며 인생의 심연을 엿보기도 하며 문장 곳곳에 여유와 평온, 고독과 회환을 곁들여냈다. 인생의 오후쯤에 당도했다는 장석주의 이야기와 함께 인생, 결혼, 돈, 시간, 사라짐, 시작과 끝, 밤과 꿈에 대하여 가만히 혼자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장석주 지음 |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