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서영 기자] 한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여간 곤혹스러웠다. 태어나 내내 시골에서 십대 시절을 보냈기에 적응을 못하겠거니 생각했다. 아니었다. 낯선 타인들과의 접촉이 너무도 싫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접촉이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버스나 지하철이 북적이는 때는 감수해야 하지만 여기 저기 자리도 한산한데 꼭 바로 옆자리로 와서 붙어앉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굳이 이 거리에서 이야기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내 얼굴 15cm 거리에서 이야기를 걸어오는 건 납득이 안 된다. ‘도를 아시냐’며 팔짱부터 끼고 보는 사람들이나 처음 보는 임산부 배부터 만져보는 사람들은 치가 떨리게 싫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놨더니 혹자는 “예민해서 그렇다”고 말하더라.
그러던 어느 날 한 매체의 뉴스에서 스웨덴의 버스 정류장 풍경을 봤다. 스웨덴의 한 버스 정류장을 찍은 사진에서 사람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멀리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간격이 우리나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리였다.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을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이를 멀리 하려는 습성이 있다. 특히 그들의 퍼스널 스페이스(개인적 공간)는 두 팔을 활짝 벌린 공간이라는 설명.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주변 일정한 공간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는 퍼스널 스페이스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무릎을 쳤다. 내가 타인과 거리에 거북함을 느끼는 이유, 이거였다. 문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닌 마음의 거리라 말한 퍼스널 스페이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 거리가 지켜지는 일이 드물까. 지켜지기는 커녕 유난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왜 일까.
(사진='개인주의자 선언' 책표지)
현직판사이자 작가인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이같은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책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솔직하게 자신의 성향을 밝히고 시작한다. 프롤로그부터 엄청난 동질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지하철 양 옆에 사람들이 앉는 게 싫어 구석자리를 찾아가고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상담원의 인사에 “왜요?”라 반문한 적도 있단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주의가 필요한 시대라 목소리를 높인다. 그가 말하는 개인주의란 이기주의와 달리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유교사상, 군대 등 끈끈한 집단 문화에 얽매어 이 개인주의마저도 이기주의, 배타주의로 여겨진다고 일침한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확실히 다르다.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저자의 글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그는 故 신해철을 개인주의자로 생각한 이유를 비롯해 자기계발 신화에 중독된 사회, 이주 노동자나 다문화 가족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 사람들이 SNS에 글을 쓰는 이유, 흉기가 되는 말 등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면면들에 대해 솔직하고 가감없는 감정들을 드러낸다.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하거나 이유없는 친절이 싫은 그이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법에 대해서 고민한다. 개인을 침범하고 간섭하는 것과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완연히 다른 일이라는 명쾌한 구분.
(사진=영화 '소수의견' 스틸컷)
저자는 배려하는 행복에 흐뭇해하고 사회 이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동료와 주변인을 이야기하며 뿌듯해한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면 마일리지가 쌓여 아이스크림과 교환 가능한 미래화폐제도를 상상하는 판사 문유석은 더없이 이상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사회를 주장하는 저자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월호를 언급하며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험한 세상에서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마지막 문장도 인상깊다.
동시에 판사로서 사회적 법리적 불합리에 안타까워하는 지점들도 여과없이 드러난다. 그는 주택경매 붐이 일었던 당시 투자자와 깡통주택 피해자라는 정반대 입장의 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현실에 착잡해한다. 당연히 무죄인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재심을 맡았다가 정해진 법리 때문에 억울함을 완전히 털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하기도 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기사 딸린 차를 탄다는 사실을 전하며 퇴직 후 낡은 자동차를 타면 청렴이 아닌 위상 추락이라 보는 사회에 한탄한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판사도 당연히 똑같은 사람이고 비슷한 지점에서 분노하고 비슷한 생각들을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 사실에 반갑고 공부만 잘했다는 판사가 이토록 ‘잡학’다식하다는 데에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게 된다. 에피소드 하나를 넘길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279쪽의 책은 부담없는 크기와 무게다. 목차를 보고 끌리는 지점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그의 대놓고 솔직한 글에 반박도 해보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다 보면 좋든 싫든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해 깊이 있게 사유할 기회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