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라이브'에서 송혜리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주영(사진=tvN 방송화면)
[뷰어스=손예지 기자] 배우 이주영의 연기는 살아있다. 꾸밈이나 계산 없이 짓는 표정과 뱉는 대사가 ‘날 것’의 느낌을 준다. 이러한 매력은 그의 드라마 데뷔작 tvN ‘라이브(Live, 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
“김규태 PD님이 내 말투나 연기 스타일이 드라마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더 반응이 궁금하다고도 하시고요. 걱정 반, 기대 반이셨던 것 같아요. 하하. 촬영하는 동안에는 PD님과 작가님 모두 신경을 많이 써 주셨습니다”
이주영은 극 중 주인공 한정오(정유미) 염상수(이광수)의 경찰학교 동기 송혜리 역을 맡았다. 호탕하고 거침없는 캐릭터로 통통 튀는 존재감을 발산했다. 시보 순경인 혜리의 사수는 지구대 최고령자 삼보(이얼) 주임으로, 이들의 세대 차이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주영은 “이얼 선배가 굉장히 온화하시다. 늘 편하게 대해주신 덕분에 좋은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었다. 드라마와 달리 실제로는 친하게 지냈다”고 웃음 지었다.
“혜리는 20대의 나와 닮았어요. 불의를 보면 못 참고, 때로는 욱하기도 하고요. 극 초반에는 ‘얘가 왜 이럴까?’ 싶기도 했죠. 삼보 주임에게 너무 못되게 구니까요. 촬영하면서 이얼 선배에게 ‘사모님이 나 싫어하시지 않냐’고 물은 적도 있고요(웃음) 그런데 내 주위에도 혜리 같은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우리 엄마요. 하하. 할 말 다 하고, 직설적이시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속은 또 사랑스러워요. 이런 혜리의 반전 면모를 잘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드라마 데뷔작부터 노희경 작가를 만난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이주영보다 먼저 배우로 데뷔한 이나영이 자신의 동생이라면서 “노희경 작가님의 엄청난 팬”이라고 했다. “나도 동생 따라 작가님의 팬이 됐다”며 “와중에 내가 먼저 노희경 작가님 작품에 출연한다니, 동생 기분이 복잡했을 거다. 그런데도 항상 응원해주고 내가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노희경 작가님의 KBS2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대본 필사를 했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스스로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노희경 작가님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포털사이트에 작가님 이름을 검색했다가 ‘라이브’를 만드신다기에 소속사에 오디션 보고 싶다고 말했죠. 그런데 마침 작가님도 나를 알고 계셨더라고요. 데뷔작 ‘몸값’(2015)을 보셨다면서요. 운명처럼 작가님과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이주영은 '라이브' 노희경 작가의 오랜 팬이라고 고백했다(사진=마일스톤컴퍼니)
‘몸값’의 이주영에게 반한 것은 비단 노희경 작가뿐만이 아니었다. 이주영은 “‘몸값’ 감독님이 웅얼웅얼하는 말투가 연기하지 않는 것 같아 좋다고 하셨었다”면서 “‘몸값’ 덕분에 이후 여러 단편 영화, 최근 개봉한 ‘독전’까지 출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묘한 매력은 업계에서 이미 소문난 상태다. 이 외에도 ‘걷기왕’ ‘마중:커피숍 난동 수다 사건’ ‘채씨 영화방’(2016) ‘그것만이 내 세상’ ‘나와 봄날의 약속’ ‘걸스온탑’ ‘경멸’ ‘코코코 눈!’(2017) 등에 연달아 출연했었다. 이주영 특유의 연기 스타일이 충무로 감독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 이주영은 “나 역시 송새벽 선배나 ‘내부자들’(2015)의 조우진 선배, ‘더 킹’(2017)의 김소진 선배의 연기 스타일을 좋아한다.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오버하지 않을까’ 더 신경 쓴다”는 연기 철학도 밝혔다.
“드라마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라이브’ 촬영 동안 정유미·이광수 선배에게 많이 배웠어요. 제대로 된 감정 연기를 선보이는 게 ‘라이브’가 처음이라 애를 많이 먹었는데, 유미 언니나 광수 오빠의 집중력부터 표현 방식까지 배울 점이 많았죠. 무엇보다 언니 오빠의 태도에 감동했어요. 나를 신인이나 후배가 아니라 동료, 친구로 대해주시더라고요. 그 위치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데 존경심까지 들었습니다”
이주영은 “드라마는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볼 수 있는 장르라 배우의 연기가 친절해야 하고, 발음도 정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라면서 “연기 전공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발성과 발음이 특이하다. 그런 점에서 TV보다는 좀 더 다양한 장르가 허용되는 영화에서 나를 더 선호하겠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아직 배우로서 걱정하고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인지 ‘라이브’에서 혜리가 ‘힘들면 경찰 관두라’고 걱정하는 삼보 주임님에게 했던 말이 공감됐어요. ‘동료가 힘들면 참아라, 이겨내라, 난 널 믿는다, 그렇게 말해줘야 한다. 나는 힘들어도 다 이겨낼 거다. 그래서 멋진 경찰이 될 거다’ 혜리가 아니라 나, 이주영이 하고 싶은 말이었거든요”
이주영은 영화 '독전' 속 농아 캐릭터 연기를 위해 3~4개월간 수화를 배웠다(사진=NEW)
이주영은 ‘멋진 배우’가 되어가는 중이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독전’(감독 이해영)에서도 농아 캐릭터를 맡아 소화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원래 다른 역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여자 캐릭터가 몇 없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원작의 농아 형제를 남매로 바꾸고 나를 캐스팅하셨어요. 나와 꼭 작업해보고 싶으시다면서요. 캐스팅 후 (김)동영 오빠와 3~4개월 동안 수화를 배웠어요. 단순한 손동작이 아니라 청각 장애인의 문화를 배워야 했기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이들은 소리를 내지 못하니까 표정이나 동작의 세기로 자기감정을 표현하거든요. 겉으로 드러러내는 연기가 서툰 터라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동영 오빠, 감독님과 온종일 수화 연습을 했죠. 만나서 연습하고 밥 먹고 연습하고 밥 먹고, 다시 연습하고… 하하. 다행히 영화 고사를 지내기 전에 답을 찾았어요”
이주영은 훤칠한 키와 동양적인 이목구비가 자아내는 오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그래서인지 여태 작품에서 연기한 캐릭터들이 예사롭지 않다. ‘나와 봄날의 약속’에서는 외계인이었고, ‘걸스온탑’에서는 외발자전거를 타는 서커스 단원을 맡았다. 이주영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매력이 느껴지는 인물이 좋다. 그 기준은 따로 없다. 그래도 여태까지는 특이한 친구들을 해왔으니, 다음번에는 시골에 사는 순진한 아이나, 평범한 사람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이주영에게 연기는 운명이다. 앞서 10여 년 간 모델 활동을 하다 우연히 연기를 만났다.
“모델을 하는 동안 무척 힘들었어요. 남들은 5~6만 해도 될 일을, 나는 9~10까지 힘을 쏟아도 안 됐었거든요. 성취욕이 높은 편이라 스스로 계속 몰아붙였고, 결국 우울증까지 앓았어요. 그러던 중 미술 작가인 지인의 영상 작업에 참여하게 됐는데, 당시 스태프들이 ‘연기 괜찮은데, 한번 해보라’고 제안해주셨어요. 그때가 20대 후반이었는데 모델이라는 직업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연기를 배워두면 모델 일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했죠. 막상 해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우울증이 없어졌을 정도로요”
평소 관찰을 즐긴다는 이주영은 “이런 습관이 배우를 할 때 큰 장점이 된다”며 “내가 지켜봐 온 것들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배우의 매력”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영화에 관심은 많았다. 대학교 때는 문예창작과를 복수 전공해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하며 우울증을 치료했다는 이주영(사진=마일스톤컴퍼니)
“모델과 배우는 정말 달라요. 모델은 그 순간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화려하게 펼쳐야 하거든요. 마치 공작새처럼요. 반면 배우는 내면의 깊은 감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죠. 더 나아가서는 자기 밑바닥까지 봐야 하고요. 힘들지 않냐고요?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해요. 내 한계를 보고 인정하면 쉽거든요.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더 노력해서 나은 사람이 되자’고 다잡는 거죠”
이주영에게 '더 나은 배우'란 어떤 사람일까? 그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배우”라며 “모두가 힘든 촬영장에서 스태프들과 동료 배우들에게 보는 것만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주는 배우가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