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서(사진=CGV아트하우스)
[뷰어스=남우정 기자] “흔들리더라도 꺾이지 않도록 줄기를 잘 잡아야겠죠”
담대하다. 이제 첫 작품을 내놓은 신인으로 대중들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을 터인데 전종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좋게 포장하고 꾸미려 하지 않았다. 영화 ‘버닝’으로 칸 국제영화제 출국 당시 휘말렸던 논란에 대해서도 담담히 털어놨다.
“공항이 공식 일정이라는 그 개념이 없었어요. 개인적인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울었는데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담겼죠.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건 분명 내 잘못이에요. 이젠 보여 지는 입장이 됐으니까요. 사전에 알았다면 아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을 거에요. 그렇지만 그게 잘못된 것인진 모르겠어요. 정답이 있다면 뭔지 묻고 싶고요. 이 일을 통해 느낀 게 있으니까 다음에 적나라하게 담기지 않게 대처하겠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전종서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길, 그 상태로 받아들여주길 원했다. 그 생각은 갓 데뷔하는 신인 배우가 소속사를 찾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회사를 알아보고 다니면서 많은 소속사들과 미팅을 했는데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내 외형적인 부분 때문에 상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스펙트럼은 이 정도라고 하는 회사도 있었고 내 가치관과 정반대인 경우도 있었어요. 이번 회사는 적어도 날 찍어내지 않고 가공시키려고 하진 않았어요. 그걸 허용할 수 있는 애도 아니고요. 난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이길 원해요. 회사도 그걸 동의했고 문제를 같이 풀어가는 방식에서 많이 공감했어요”
전종서는 자신에게 맞는 연기 선생님을 만나 연기를 꾸준히 배웠지만 소속사를 찾는 과정이 꽤 길었다고 했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아 떨어지는 회사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정이 길다 보니 지치고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도 생기지 않았을까.
전종서 (사진=CGV아트하우스)
“많이 지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어요. 내가 까다로워서 인지 명확해서 인지 모르겠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흔들리죠. 근데 꺾이진 않아요. 그런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이제 시작 단계니까요. 난 이 일이 동등하게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회사를 찾다 보니 그렇게 보는 분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내가 나다울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건 안 해요. 날 위해서 내가 행복하고 즐기고 싶어서 하는 거에요. 누군가의 기준, 규격에 맞출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날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돌고 돌아서 만난 소속사는 전종서를 일주일 사이에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전종서는 현 소속사와 계약한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오디션을 봤고 그게 바로 영화 ‘버닝’이었다. 회사는 물론 ‘버닝’과도 운명적인 만남이다.
“작년 8월이었어요. 노출에 대한 언지는 줬는데 이런 내용이라는 건 몰랐어요. 노출에 대한 편견은 없었어요. 회사랑 계약한 지 일주일도 안됐을 때 오디션 제의를 받은 것이라서 당연히 앞으로 많은 오디션을 봐야 하니까 큰 의미부여를 하고 진행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전종서 (사진=CGV아트하우스)
‘버닝’은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창동 감독의 8년만의 신작이며 그가 처음으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전종서는 거장의 작품으로 데뷔해 국제 무대까지 밟았다. 기존 배우들에게도 흔치 않은 일이다.
“만약에 내가 경험이 많고 연기적으로 다양한 걸 해봤던 애라면 칸이라는 게 크게 다가왔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꿈의 무대라고 하기엔 각자에게 의미하는 장소가 다른 것 같아요. 나에게 칸은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끝나지 않은 일정이라서 아쉬움을 달랜 곳이에요. 이창동 감독은 많은 걸 요구하지 않고 영화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렇게 해’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고 들으시는 게 순서였어요. 그 안에서 알아가는 것들이 생겼죠”
극 중 신비로운 매력이 있는 해미 역을 맡은 전종서는 마임, 베드신, 춤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솔직하지만 외로움이 꽉 차있는 20대의 모습이 전종서의 얼굴을 통해 드러난다.
“캐릭터를 구축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는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요. 배워본 적도 없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어요. 그냥 내가 배운 건 캐릭터와 상황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거에요. 현실이 주는 행복이 있고 불안함, 억울함, 분노가 있는데 그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런 부분에 있어서 100% 해미와 닮진 않아도 공감을 한 것 같아요”
전종서 (사진=CGV아트하우스)
‘버닝’ 속 해미처럼 전종서도 이제 25살, 20대 청춘을 살아가고 있다. 본인의 청춘은 어떤 모습인지 묻자 곰곰이 생각을 하던 전종서는 “즐기면서 지내는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킬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하고 말에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누구를 상대하든 그 순간이 진실이길 원해요. 아쉬움이 있는 건 아직 많은 사람을 만나보진 않았어요. 사교적이진 못했어요. 거기서 오는 깨달음도 있고 외로움도 알게 됐지만 앞으로 좋은 인연들이 있기를 원해요. 그들이 누가 됐든 좋은 만남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첫 작품을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마쳤다. 하지만 처음 꽃길이 언제까지 펼쳐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전종서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흔들릴 순 있겠지만 꺾이진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모습에서 단단함이 느껴진다.
“어떤 분들은 ‘모든 영화 환경이 이렇진 않을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연기를 계속 하게 된다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야겠죠. 흔들리더라도 꺾이지 않도록 줄기를 잘 잡고 있으려고요. 아직 스스로 영화에 나왔다고 해서 배우라고 생각이 들진 않아요. 그냥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싶어요. 인간의 나로서 주목을 받기 보단 영화와 함께 가는 게 먼저였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