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뷰어스=노윤정 기자] 서숙향 작가의 로맨틱코미디는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서숙향 작가는 클리셰도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필력을 보여준다. 현재 방영 중인 SBS ‘기름진 멜로’도 그렇다. ‘기름진 멜로’는 중식당 헝그리웍을 배경으로 서풍(이준호)과 단새우(정려원), 두칠성(장혁)의 삼각로맨스를 그린다. 완벽한 요리 실력에 까칠한 성격을 가진 셰프 서풍, 다정하고 순애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칠성, 밝은 에너지로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새우. 고전적이지만 흥미로운 삼각관계다. 여기에 개성 강한 조연 캐릭터들이 등장해 드라마를 보는 ‘맛’을 더한다. 다채로운 중식 요리들은 보는 이들의 침샘을 자극한다. ‘요리’라는 소재와 로맨틱코미디의 맛깔스러운 만남이다. 그리고 이 조합은 8년 전 서숙향 작가가 집필한 흥행작 ‘파스타’를 떠올리게 한다.
■ ‘버럭 셰프’ 이선균과 ‘공블리’ 공효진이 만든 수작 로코
‘파스타’는 MBC에서 지난 2010년 방영한 드라마다. 벌써 8년 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심심치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그 이름이 회자된다. 그만큼 방영 당시 큰 사랑을 받았다. 최고 시청률은 21.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최종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시청률뿐만이 아니다. ‘파스타’는 시청자들의 성원에 당초 기획보다 4회 늘어난 20회로 종영했다. 극 중 등장한 “예스, 셰프(Yes, Chef)”라는 대사가 방영 당시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파스타의 한 종류인 알리오 올리오가 이 드라마 한 편을 통해 대중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도 당시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작 로맨틱코미디를 꼽을 때 ‘파스타’가 언급된다. 왜일까.
‘파스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스페라를 배경으로 요리사를 꿈꾸는 주방보조 서유경(공효진)과 성격 불같은 톱 셰프 최현욱(이선균)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유경과 최현욱의 로맨스가 스토리의 큰 줄기를 이룬다. 그 둘 사이에는 최현욱의 전 연인 오세영(이하늬)과 서유경을 3년 간 짝사랑해온 김산(알렉스)의 존재가 있다. 클리셰지만 흥미로운 사각 러브라인이다. 여기에 화려한 플레이팅을 자랑하는 메뉴들이 매회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식욕을 자극한다.
스토리가 아주 신선하진 않다. 하지만 서숙향 작가 특유의 통통 튀는 필력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또한 배우들의 맞춤 연기가 ‘파스타’를 수작으로 만들었다. 공효진은 사랑스러운 서유경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며 ‘공블리’라는 애칭을 얻었다. 공효진이란 옷을 입은 서유경은 누가 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또한 이선균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벗고 ‘버럭 셰프’로 거듭났다. 배우로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과 배우 모두 윈-윈 한 성공적인 캐스팅이라 하겠다. 맞춤 캐스팅은 극을 이끄는 캐릭터들의 매력을 십분 살렸고,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몰입도도 높아졌다. ‘파스타’가 여전히 드라마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다.
(사진=MBC)
■ ‘파스타’에 대한 감상, 8년 전과 같을까
때문에 지금도 ‘파스타’를 ‘정주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VOD 서비스 등을 이용해 ‘파스타’를 다시 시청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보더라도 그때와 똑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이선균이 연기한 최현욱은 뭇 여성 시청자들을 설레게 한 캐릭터다. 까칠하고 독한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지만, 그 점이 오히려 최현욱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이른 바 ‘나쁜 남자’에 열광하던 시기였다.
이후 8년의 시간이 지났다. 다시 보니 최현욱과 서유경의 로맨스에 어쩐지 불편한 지점이 있다. 직급에 의해 형성된 최현욱과 서유경 사이 상하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일단, 최현욱이 라스페라에 부임하며 가장 처음 한 일을 떠올려보자. 그는 레스토랑 부임 직후 여성 요리사들을 모두 해고했다.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는 선언과 함께 말이다. 최현욱이 여성 요리사들을 해고한 사유는 있지만 정당해 보이진 않는다.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최현욱이 마초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최현욱은 주방에서 셰프의 절대적 권한을 역설하는 권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일에 대해 프라이드를 갖는 것과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때문에 최현욱의 행동은 때론 무례하게 느껴진다. 서유경을 대할 때조차 말이다.
드라마의 결말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파스타’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해피엔딩에 이르는 과정까지 완벽하진 않았다. 서유경은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이탈리아 유학의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최현욱은 유학을 가고 싶어 하는 서유경에게 섭섭함을 느낀다. 그리고 서유경의 의견은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을 대신 유학 보내기로 결정한다. 서유경의 실력으로 따낸 정당한 기회를 멋대로 타인에게 넘긴 것이다. 물론 서유경 역시 결국은 최현욱과 함께 라스페라에 남길 택한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같은 선택을 했다. 하지만 최현욱의 처사에서는 서유경의 선택을 기다리고 존중해주는 당연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로맨스를 응원하는 시청자 입장에도 최현욱의 행동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파스타’는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로맨스 서사만 보더라도 잘 만든 로맨틱코미디가 갖춰야 할 대부분의 요소가 담겼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시청자들의 인식이 변했다. ‘파스타’에서도 감상이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다. 버럭 버럭 소리치며 ‘막말’하는 이선균의 모습이 마냥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드라마 한 편을 다시 보며 어쩐지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