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남우정 기자] 태초에 ‘체인지’가 있었다.
지금은 흔하게 쓰이는 소재지만 1997년 영화 ‘체인지’가 개봉했던 당시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은 센세이션했다. 그 후 영혼 체인지라는 소재는 ‘시크릿 가든’ ‘울랄라 부부’ ‘수상한 그녀’ ‘아빠는 나’ ‘사랑하기 때문에’ 등 드라마,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그만큼 사랑을 받았고 재미가 보장된 소재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약 20년이 지난 현재, 또 하나의 영혼 체인지 작품이 등장했다. 최근 개봉한 진영, 박성웅 주연의 ‘내안의 그놈’이다.
영화 ‘체인지’는 학교의 말썽꾸러기 대호(정준)과 모범생 고은비(김소연)이 번개를 맞은 후 몸이 뒤바꿔 버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당대 청소년 스타였던 정준과 김소연이 캐스팅 돼 화제를 모았으며 김민종, 이경영, 이승연 등의 풋풋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김혜수, 박중훈이 카메오로 출연할 정도로 화제작이었다. 그 결과 ‘체인지’는 서울에서 18개의 스크린으로 약 16만명의 관객들 동원했다. 심지어 영화 마지막에 흘러나온 조장혁의 OST ‘체인지’까지 대박을 쳤다.
9일 개봉한 ‘내안의 그놈’은 명문대 출신의 조직 폭력배 장판수(박성웅)과 고등학생 김동현(진영)이 사고로 몸이 뒤바뀌게 된다. 사고로 인해 충돌한 두 사람은 정신을 잃게 되는데 동현의 몸만 먼저 깨어나게 되고 판수의 몸은 식물인간인 상태다. 먼저 세상을 접한 판수는 동현의 몸인 상태로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해간다. 그리고 운명의 짝을 만난다.
두 영화는 영혼의 주인이 다른 몸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웃음을 선사한다. 한 순간에 성별이 바뀐 대호와 은비, 무려 30년의 나이를 역행한 판수와 동현의 달라진 가장 큰 웃음의 포인트다.
성별이 바뀐 대호와 은비는 화장실 가는 것만으로도 곤혹이다. 대호의 몸에 들어가게 된 은비는 아침마다 애국가를 불러야하고 은비의 몸에 들어간 대호는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고통을 알 게 된다. 가족과 친구들도 성격이 완전하게 바뀐 두 사람 때문에 혼동을 느낀다.
‘내안의 그놈’은 조직 폭력배 판수가 왕따인 동현의 몸에 들어가면서 성격이 확 바뀐다. 판수는 동현을 괴롭히던 애들을 주먹으로 응징하는 것은 물론 뚱뚱했던 동현의 몸까지 바꿔놓는다. 만나는 사람에게 악수 먼저 건네고 상석에 앉는 게 익숙한 판수의 아재스러움은 여전하다. 아재인 판수가 요즘 애들을 이해하는게 쉽지 않다.
‘체인지’와 ‘내안의 그놈’의 중심 배경은 학교다. 두 영화를 비교하다 보면 확 달라진 학교 문화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일단 ‘체인지’는 남녀 성별과 모범생과 말썽꾸러기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그려낸다. 학교에서 꼴통으로 통하는 대호가 부리는 말썽 정도는 현재와 비교하면 약과다. 지각을 하거나 밴드부를 하고 형 담배 정도를 훔쳐 피는 정도다. 그러나 학교에서 성적이 바닥인 대호는 문제아로 분류한다. 선생님들의 선입견이 그대로 반영됐다.
반면 ‘내안의 그놈’이 그린 현재의 학교는 아이들끼리 무리를 지어 여러 명의 왕따와 빵셔틀을 만들어낸다. 동현이 그 중 하나였다. 부모의 직업 왕따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돈 많은 고등학생은 별장까지 빌려서 여자애 한 명을 곤경에 빠트리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체인지’ 속 아이들은 순수해 보일 지경이다.
또 ‘체인지’와 ‘내안의 그놈’의 가장 큰 차이라면 가족의 변화다. ‘체인지’ 속 대호와 은비의 가정은 부모님에 형제까지 있는 전형적인 가족 구성원을 그려낸다. 반면 ‘내안의 그놈’은 편부 가정에 미혼모로 애를 키우는 여성, 서류상 부부에 불륜을 일삼는 가정까지 등장한다. 이런 현실적 가족 구성 덕분에 ‘내안의 그놈’ 속 웃음 포인트인 판수의 첫사랑 미선(라미란)을 중심으로 한 로맨스가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