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사람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환경에 처하는가가 그 사람을 바꿔놓는다. 얽히고설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 속에서 이보다 자명한 이치는 없다.
KGB를 위해 가장 오랫동안 일한 영국 스파이 멜리타 노우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레드 조앤'은 주인공 조앤이 대학 입학 후 알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는지, 여성으로서 어떤 일을 겪는지를 흡인력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레드 조앤'은 조앤의 집으로 MI5 요원이 들이닥치면서 시작된다. 이후 5일 동안의 끈질긴 심문이 이어진다. 그리고 동시에 조앤의 인생은 그의 입이 아니라 머리 속에 떠오르는 기억과 정보 요원들이 들이미는 당시 문건으로 펼쳐진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심문 과정과 아들과의 미묘한 갈등을 그린 현재, 애정과 질투, 이기심이 공존했던 인간관계 등. 과거와 현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교묘하게 평행선을 달린다.
(사진=영상 캡처)
독자는 '레드 조앤'에서 '조앤은 왜 스파이가 되었을까', '조앤은 어떻게 지금까지 잡히지 않을 수 있었을까'라는 호기심을 통해 한 인간의 생과 그 안에 뒤섞인 사회와 관계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된다. 작가의 영리한 구성력과 정교한 디테일 표현, 섬세한 심리 묘사, 현재성을 살린 어투 등은 작품 전반에 걸쳐지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 그 안에 담긴 더 큰 진실을 추적해가도록 만든다.
'할머니 스파이'란 별칭이 붙은 멜리타 노우드를 바탕으로 조앤이란 인물이 탄생했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은 많지 않다. 연구소에서 비서로 일해 기밀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으며 여자라서 의심을 사지 않았다는 것 정도다. 작가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멜리타 노우드와는 전혀 다른 조앤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며 처참하고 냉혹한 현실을 목격한 조앤의 내적 갈등과 결심을 통해 이념이 낳은 전쟁이 가진 무한한 공포와 인간의 무기력함, 진정한 인류애에 대한 고민을 전한다. 제니 루니 지음 | 황금시간
(사진=황금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