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MBC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가시나들’은 억지 설정 없이 할머니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만으로 다채로운 감정을 만들어냈다. 시청률은 낮지만 프로그램이 전하는 편안한 매력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의 정규 편성을 응원하고 있다.
2일 오후 6시 45분 방송된 ‘가시나들’에서는 박무순 할머니의 편지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박무순 할머니는 어릴 때 한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가시나가 배워서 뭐하냐’는 꾸중만 들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해서 책가방 챙길 때도 글을 알면 챙겨줄 텐데 모르니까 해줄 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가방을 못 싸면 눈치로 어림잡아서 채워줄 때 속상했다”고 했다.
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진솔한 편지는 출연진과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하며 화제를 모았다. 글을 몰라 겪은 설움과 지금이라도 배우기 위해 분투하는 할머니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억지로 꾸민 설정 없이도 할머니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드라마가 됐고, 이는 ‘가시나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초 할머니들이 주인공이라는 기획이 밝혀진 후 ‘가시나들’은 자극적이지 않은 편안한 재미를 기대케 했다.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는, 할머니들의 한글 공부를 응원하는 프로그램의 착한 의도도 눈에 띄었다.
베일을 벗은 할머니들은 제작진의 통제가 통하지 않는 자유롭지만 순박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호감을 자아냈다. 보통의 연예인이었다면 카메라 뒤에 있는 제작진들을 없는 존재처럼 여기며 관찰 예능의 특징을 살렸겠지만 할머니들은 내내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제작진을 안타까워하며 두유를 건넸다. 식사도 하지 못하고 일하는 그들을 식탁으로 불러들이며 할머니의 정을 느끼게 했다.
이들과 호흡하는 게스트와 MC도 맞춤형이었다. 친근한 사투리로 다가가는 장동윤과 밝은 에너지로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최유정, 수빈, 우기, 이브를 비롯해 할머니와 게스트들의 중간 다리 역할을 톡톡히 소화하는 문소리의 완벽한 조화가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자연스럽게 정규 편성을 향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문제는 시청률이다. 당초 파일럿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지만 호평이 쏟아지는 만큼, 시청률만 받쳐주면 정규 방송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시나들’은 첫 방송 이후 3% 내외를 기록하며 아쉬운 성적표를 받고 있다. 동 시간대 방송 중인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15%를 넘나들며 인기를 얻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다만 ‘가시나들’ 전작인 ‘궁민남편’의 폐지가 남긴 선례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전작인 ‘궁민남편’은 2%대라는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안정환, 김용만, 김성주, 차인표, 권오중이 만들어내는 케미스트리(Chemistry)가 살아나면서 프로그램 전체의 재미도 높아졌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시청률도 상승세를 보이며 최고 시청률 7.8%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폐지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출연진이 마지막회에서 눈물을 쏟은 것은 물론,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MBC의 섣부른 판단에 대한 아쉬움이 이어졌다.
MBC 관계자는 ‘가시나들’ 정규 편성 가능성에 대해 “현재 준비 중인 파일럿 예능프로그램들이 많다. 그 프로그램들이 다 끝나봐야 정규 편성에 대해 논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