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윌 엔터테인먼트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종횡무진 활약 중인 이정은의 존재감은 ‘기생충’에서도 빛났다. 우아한 부잣집 가정부부터 비밀이 드러난 뒤 검은 속내를 드러내는 섬뜩함까지. ‘기생충’의 기묘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며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평범한 가정부인 것처럼 보였던 문광이 실제로는 저택 지하에 남편 근세(박명훈 분)를 숨기고 있었다는 반전은 ‘기생충’의 메시지를 위한 핵심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관객들의 몰입을 위해 캐릭터 서사를 한동안 숨겨야 했던 그는 남편 역을 맡은 박명훈과 함께 인터뷰에 나선 이 날만을 기다렸다며 웃음을 지었다.
“여태까지 내용을 유포하지 않느라 힘들었다. 관객들의 감상을 좌우하기 때문에 중요했다. 하지만 박명훈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나는 인터뷰는 없었지만 칸에 가서 사진도 찍고 했으니 그쪽에 비하면 호사를 누린 편이다. 오늘은 함께 나설 수 있어서 좋은 날이다.”
박명훈과는 15년 전 연극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다. 때문에 부부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자꾸 보다 보니 남편 얼굴이 순간적으로 장동건처럼 보인 적이 있다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후배 배우를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봉준호 감독님이 ‘재꽃’이라는 영화에서 그의 술 취한 연기에 반했다고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지하에 오래 있던 인물이니 마른 체형을 찾으셨는데 박명훈에게 찰나의 장동건이 보였다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며 캐스팅을 확신했다. 촬영을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장동건이 보인다고 농담을 하셨다. 나도 자꾸 보니까 ‘찰나’ 장동건이 보이더라. 카메라 안에 담긴 박명훈의 얼굴이 참 좋다.”
사업이 망하고, 사채 빚에 쫓기는 극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저택 지하의 숨은 공간에 남편을 숨겨두고 음식을 빼돌리는 문광의 행동이 평범하지는 않다. 봉 감독은 처음부터 이정은에게 ‘이상한’ 영화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봉 감독을 향한 신뢰가 있었던 이정은은 그저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감독님은 항상 ‘재밌는 것, 이상한 걸 한 번 해보자’라고 말씀 하신다. 그러나 봉 감독님은 늘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을 많이 만드시지 않나. 그런 분이 이상하다고 한 영화라 더 좋을 것 같았다.”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
그럼에도 고민은 있었다. 특히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에게 밀려 해고당한 문광이 박 사장(이선균 분) 가족이 없는 틈을 타 저택을 다시 찾고, 이때 초인종 안에 담긴 기묘한 문광의 표정은 ‘기생충’의 분위기를 단번에 뒤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숨겨진 비밀들이 드러나며 장르 성격이 달라지는 만큼 중요한 장면이었고, 그 역할을 이정은이 제대로 해냈다.
“그때부터 반전이 시작된다는 건 알았지만, 상영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효과가 나올지는 몰랐다. 내 얼굴에서 그런 느낌이 나올 수 있는지 걱정을 했다. 핵심 인물들은 강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나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또 내가 사실 귀엽지 않나. 그런 게 걱정이었다. 재미있게 봐주신 것 같아 나도 놀랐다.”
이 장면은 시나리오 상으로 ‘술에 취한 문광이 초인종을 누른다’라는 지문으로 표현돼 있었다. 이정은은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섬뜩함을 주기 보다는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술까지 마셔야 했던 문광의 당시 상황에만 집중했다.
“지문은 간단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예의바르게 신분에 대해 설명을 한다는 설정은 있었다. 제정신이라면 조리 있게 말을 하겠지만 두서가 없지 않나. 문광도 나름의 용기를 낸 것이다. 내가 표현한 과한 친절이 공포감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그냥 최선을 다 한 것이다. 나는 오히려 단순하게 임했는데, 그러면서 장르적 재미가 나온 것 같다.”
②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