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재영은 뮤지컬 ‘니진스키’를 통해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 앞서 임한 작품들도 허투루 임하지 않았지만 실존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에서 다뤄지지 않은 인물이기에 디아길레프에 다가가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거듭했다.
‘니진스키’에서 니진스키는 자신이 추고 싶은 춤과 관객들이 원하는 춤 사이에서 갈등한다. 관객들이 원하는 뻔한 춤을 추던 그는, 자신이 추고 싶은 춤을 내보이고 관객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지만, 역사상으로는 ‘발레를 한 발자국 진보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관객들이 원하는 춤을 추는 것과 자신이 추고 싶은 춤을 주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이분법적이지 않나. 결국 ‘관객들이 원하는 예술’과 ‘원하지 않는 예술’로 나뉘는 거 같다.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하는 게 나만 생각하고,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안재영은 그러면서 ‘관객’이라는 ‘불특정 대상’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관객이 원하는 예술에 대해 고민하면서 ‘난 관객을 왜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 지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관객은 불특정 다수 아닌가. 작품에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그건 작품을 봐주는 이의 몫이다. 창작자들은 누군가가 돌을 던진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딜레마지만 이런 고민을 많이 한다.”
‘니진스키’에 이어, 제작사 쇼플레이는 ‘디아길레프’라는 작품도 준비 중이다. 정확한 시기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뮤지컬 ‘디아길레프’가 오른다면 안재영은 디아길레프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을까. ‘니진스키’에서 드러낸 디아길레프와 또 다른 느낌일 법하다.
“디아길레프를 맡으면서 인물이나 작품에 흥미를 갖게 됐지만, 사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다. 쉽지 않게 준비했던 만큼 디아길레프라는 인물에 더 깊숙하게 빠져 들어갈 수 있을 거 같다. 실존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는 왜곡하지 않아야 하는 부담도 있다. 팩션이라 조금 더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디아길레프라는 인물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의 동명의 음악을 바탕으로 디아길레프가 제작한 발레로 작품이다. 당시 평단은 비난을 퍼부었고, 관객들 역시 거센 반응을 일으킨 것으로 기록됐다. 창작자로서, ‘봄의 제전’처럼 실험적인 작품도 해볼 의향도 있을까.
“이미 해봤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다. 예술가이기 때문에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이다. 물론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관객을 기만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고민도 없이 ‘이게 예술이야!’라고 는 건 무책임한 거다. ‘봄의 제전’은 적어도 관객을 기만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극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니진스키의 엄청난 고민도 있었고, 2년 정도 작품이 미뤄지는 등이 사건도 있었다. 작품에 돌을 던진 사람이 나쁜 것이냐, 그런 실험적인 작품을 올리지 말아야 하나, 고민이 들긴 하지만 ‘작품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안재영은 디아길레프, 니진스키와 같은 창작자인만큼, 작품에 공감하는 부분도 컸다. 배우로서 작품의 흥행을 고민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그것이 주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작품이 오르기 며칠 전에 간신히 대본을 받아서 올렸는데 잘 된 적도 있고, 대박 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흥행 여부를 떠나, 최선을 다해 좋은 작품을,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중요하다.”
당시 ‘봄의 제전’은 정형화된 발레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됐다. 안재영은 “디아길레프도 내심 불안감은 있었을지 몰라도, 획기적인 시도를 하고 싶어 ‘봄의 제전’을 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봄의 제전’을 난해하다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난 너무 좋더라. 디아길레프가 선택하고, 추진한 과정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다시 생각해 볼 문제 같다. 당시에 논란의 중심에 서고, 니진스키가 저평가되고, 작품이 망했을지라도 말이다. ‘봄의 제전’을 계기로 발레뤼스의 작품이 변했다는 역사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 않았나.”
뮤지컬 ‘니진스키’는 8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