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산업계는 명과 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운 반도체 업계는 호황을 구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했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산업계는 지난 11월 월간 기준 수출액이 사상 최초로 600억달러를 넘어서며 신기원을 열었다. 반면 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요소수,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에 치명적인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뷰어스는 올 한 해 산업계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이슈를 되짚어봤다. -편집자 주
지난 9월 반도체 수급난으로 가동이 중단된 현대차 아산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올해 국내 산업계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의 충격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크게 휘청였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지속된 가운데 중국발(發) 요소수 품귀사태까지 터지면서 물류를 중심으로 산업계는 물론 국민 일상까지 멈출 뻔했다.
특히 요소수 사태는 2019년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규제로 촉발된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특정 국가 의존도가 큰 약점을 다시금 노출됐다.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을 시 공급망 위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 반도체 수급난 산업계 암초로 부상…향후 전망도 불투명
24일 산업계는 올 초 시작된 반도체 수급난이 산업계 최대 리스크로 작용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서 표면화했듯 반도체는 단순한 상품으로 치부할 수 없는 없는 분야다. 반도체 칩 없인 시민의 일상생활이나 공공인프라, 서비스나 첨단 제품 생산, 무기시스템의 운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가의 생존 필수품이자 안보 자산이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장기화하면서 지난달 국내 완성차 5개사의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크게 감소했다. 반도체 수급난이 생산량 감소-국내외 판매 부진-신차 출고 적체로 이어져 '트리플 악재'를 면지 못한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내수 판매는 66만726대로 작년 대비 8.2% 줄었고 기아 역시 작년보다 5.1% 적은 48만7727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르노삼성은 내수시장에서 8만7929대를 판매해 작년 대비 38.7% 줄어든 실적을 냈고 쌍용차 7만9439대(전년비 36.4%↓), 한국지엠 7만3695대(전년비 29.7%↓)를 기록했다. 지난달 자동차 수출은 4.7% 줄어든 17만8994대에 그쳤다. 업체별로는 현대(8만2285대, -11.8%), 기아(7만2400대, -5.0%), 한국지엠(9968대, -32.8%), 쌍용(2471대,- 4.6%) 등이 저조한 실적을 냈다.
이처럼 저조한 판매 실적은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로 인해 야기됐다. 역대급 신차 슈퍼사이클을 맞은 현대차와 기아는 적정 물량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신차 출고 적체로 이어졌고 볼륨 모델들의 경우 최소 6개월~1년의 대기기간이 생겨나기도 했다.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해 국내 완성차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공장 가동을 수차례 중단해야 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의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등 운송장비 산업은 설비 투자가 2.4% 줄었다. 통계청의 10월 전 산업 생산지수를 봐도 제조업 생산은 공급망 차질 영향으로 넉 달째 감소했다. 제조업 생산은 3.1%, 자동차 생산은 5.1% 각각 줄었으며 자동차 등 전방 산업 부진의 영향으로 1차 금속 생산도 5.9% 감소했다.
공급망 이슈는 내년에도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LG경제연구원은 '2022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공급 차질이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고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강해지며 공급망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며 "내년 중 공급망 문제가 모두 해소될 것으로 낙관하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경기도 한 주유소에서 요소수를 구매한 화물차 차주들이 차에 요소수를 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요소 대란, 물류 마비 직전까지 몰아…수입선 다변화 없으면 재발 가능성 커
산업의 동맥인 국내 물류를 마비 직전까지 몰고 갔던 요소수 품귀 사태는 글로벌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다.
중국과 호주가 무역분쟁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국내 산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하지 누구도 못했다. 그러나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로 중국 내 석탄 공급이 부족해지자 석탄에서 추출하던 요소 수급에도 문제가 생겼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국이 10월에 취한 요소 수출 제한 조치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름도 생소했던 요소수가 경유차와 화물트럭의 필수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물량 부족으로 평소 10ℓ(리터)당 1만원 수준이던 요소수 가격은 10배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요소수를 구하기 어려웠던 국민들은 세벽부터 주유소나 요소수 생산업체에서 긴 줄로 늘어서는 고충을 겪어야 했다.
화물트럭을 중심으로 한 물류난 우려에 더해 대중교통이나 소방차 등의 운행에도 차질이 예상되고 산업현장의 원자재 수급난 등 2차, 3차 피해 우려도 나왔다.
여기에 급한 마음에 찾아온 이들의 사정을 악용해 판매 현장에서 가격을 올려버리거나 주유하는 고객에만 판매하는 ‘끼워 팔기’ 수법, 주유소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가격 등이 사태를 키웠다.
현장에서는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현 구조 하에서는 '제2의 요소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요소수 대란으로 큰 곤욕을 치른 만큼 중국 의존도가 높고 생산공정에서 비중이 큰 필수품목에 대해서는 대체 수입처 확보 및 비상시 품목별 재고관리 매뉴얼 구축 등 정부와 기업이 함께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월 기준 한국 수입 품목 1만2586개 가운데 요소처럼 특정국에 80% 이상 의존하는 품목이 3941개에 달했다. 이 중 중국 수입 비율이 80%를 넘는 품목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정부와 산업계도 공급망 관리에 중요성을 절감하며 문제 해결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정부는 탄소중립 기조 아래 자동차 산업을 디젤 중심에서 친환경차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관련 예산을 집중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2026년 전세계 전기차 판매량을 기존 100만대에서 170만대로 상향 조정하고 이를 위해 2025년까지 미국에 74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완성차 업계도 친환경차 중심 생산에 잰걸음을 하고 있다.
요수수의 경우 정부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호주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업계도 최근 요소 수입 다변화를 추진하는 한국요소얼라이언스(가칭)를 설립하며 수입선 디변화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요소수 사태에서 드러난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경제안보와 밀접한 핵심품목 공급망 관리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