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MBC,SBS, tvN
드라마 촬영 현장은 ‘지옥’이라고 할 정도로 악명 높은 노동 환경이었다. 현장과 관련된 배우와 스태프들 대다수의 신음소리가 이어진 곳이다. 특히 일부 작가들이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대본을 집필하는 풍토가 생겨나면서 드라마 제작 환경이 ‘생방송’처럼 긴급하게 돌아갔다. 소위 ‘드라마 생방제작’이라고 불렸다.
2010년 전후를 기점으로, 김은숙 작가를 비롯한 일부 작가들이 시청자 반응을 보면서 대본을 쓰는 방식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때 부터 일부 작가의 특출한 능력이 일반화처럼 여겨지면서 거의 모든 드라마가 약 2~3회 촬영만 해놓고 방송을 시작했다. A4용지로 작성된 ‘쪽대본’이 일상화가 됐고, 스태프와 배우들은 늘 ‘5분 대기조’ 상태였다.
한 방송관계자에 따르면 배우 손현주와 김상중이 출연한 SBS는 ‘추적자’는 방송이 몰리면서 4일 쉬고 3일을 밤샘 촬영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 약 3~4일 동안 쉰 이유는 그 시간에 작가가 대본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긴박하게 이뤄진 작업치고 웰메이드 작품에 해당하는 뛰어난 결과물이 나온 편이다. 스태프와 배우들의 혼신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명작으로 꼽히는 MBC ‘하얀거탑’도 마지막 방송은 방영이 시작된 밤 10시 넘어서까지 최종본 편집이 이어졌고, ‘해를 품은 달’, SBS ‘용팔이’, tvN ‘치즈인더트랩’ 등을 비롯한 국내에서 제작된 거의 모든 작품의 스태프들이 생방제작에 시달렸다. 이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제작비 540억에 달하는 기대작이었던 tvN ‘아스달 연대기’는 장시간 촬영으로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몇날 며칠 밤낮 없이 촬영하다 1시간씩 번갈아가며 잠을 자고 오는 일이 다반사였고, 오후 6시까지 촬영한 분량을 편집실에 넘기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역량으로 편집한 뒤 10시에 방송을 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상이었다.
때문에 방송사고가 잦았다. CG 무편집분을 그대로 송출한 SBS ‘빅이슈’와 CG 미완성분이 여러차례 노출된 tvN ‘화유기’ 등이 대표적이다. ‘화유기’는 한 스태프가 안전장치 없이 3m 높이에서 샹들리에를 설치하다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2016년 1월 CJ E&M PD로 입사해 같은 해 4월 ‘혼술남녀’ 팀에 배치된 이한빛 PD는 6개월 만인 10월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너무 과도한 업무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유로 대두됐다.
뿐만 아니라 고강도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도 문제였다. 소위 마이크로 불리는 업무를 맡은 한 스태프 B씨는 2006년 기준 한 달 내내 수 백 시간을 일하고 80만원을 받아갔다. 라인을 맡은 한 스태프의 월급은 50만원이었다. 비교적 나은 환경에서 있었던 진행팀 스태프는 ‘생방제작’ 가운데 쉬는 날 없이 밤샘 촬영을 했음에도 월 320만원 정도의 수당을 가져갔다.
사진제공=tvN, SBS
한동안 비슷한 문제가 이어지다, 현 정부가 들어오면서 점차 근무 환경의 질이 높아졌다. 그런 가운데 최근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KBS에서 방영 중인 4개 드라마 제작현장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드라마 제작 현장의 스태프들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이 12.2시간, 근무일수는 3.5일, 1주 평균 연장노동시간은 14.1시간이었다. 지난해 1차 감독 당시 1일 평균 노동시간은 15.2시간, 근무일수는 5.6일로 1주 평균 연장노동시간만 28.5시간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현격히 발전했음이 확인된다.
또 계약 형태도 이전에는 구두계약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서면계약을 체결했다.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제 시행과 맞물려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약 4년 경력의 카메라 팀에서 일하는 A씨는 약 400만원(세후) 정도의 월급을 수령한다고 밝혔다. 드라마 촬영에 전혀 경력이 없는 연출팀 막내도 약 250만원 가량의 월급을 수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쉬는 날이 일부 보장되는 가운데 얻어가는 임금이라는 점에서 분명 유의미한 발전이다.
A씨는 “환경이 좋아지다 보니 촬영 스태프로서 크게 꿈이 없는 사람들도 계속 이 일을 한다. 여건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업무 환경인 것 같다. 다만 안 좋은 환경은 여전히 안 좋은 것으로 안다”며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때문에 ‘몸은 편해지지만 임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도 많이 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환경이 꾸준히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발생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의 근로 감독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장노동 제한 위반, 최저임금 위반, 서면 근로계약 미작성 등 법 위반사항도 확인됐다.
우선 8개소에서 연장노동제한을 위반하다 적발됐는데, 최대 1주일에 33시간까지 연장노동을 강요한 사례도 밝혀졌다. 최저임금 위반이 적발된 곳은 3개소로, 스태프 3명에게 22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서면 근로계약을 작성하지 않은 곳은 16개소로, 스태프 184명 중 128명에 대해 서면 근로계약을 작성하는 대신 업무위탁계약만 체결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동관계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시정하도록 조치하는 한편, 드라마 제작업계 스스로 노동관계법을 지키도록 근로감독 결과를 정리해 안내 자료를 제작·배포하고 설명회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과거부터 문제가 돼왔던 임금 체불 부분도 완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들어 카메라 팀의 보조 중 최고 높은 서열의 담장자에게 제작사가 임금을 주고 이를 나눠주는 형태로 계약하는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A씨는 “제작사가 모든 스태프들을 직접 계약하는 경우도 있고, 감독 외에 가장 높은 서열의 담당자에게 팀원들의 모든 임금을 주고 그에게 맡기는 형태도 있다. 이럴 때 이 담당자가 임금체불을 하는 경우가 있다. 밑에 팀원들 중 정보력이 없는 경우에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생긴다. 월에 10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가로채는 경우가 있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제작사가 책임까지는 안 지더라도 체불이 발생할 수 없는 가이드는 있었으면 한다. 방송 제작 쪽이 군대 문화가 있어서 힘 없는 친구들은 높은 서열의 선배에게 문제가 있어도 이를 지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