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여의도 한양아파트 전경. (사진=뷰어스 DB)
서울 주요 도시정비사업지에서 잇따라 신탁사를 선택하고 있다.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로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사업 추진에 속도감을 더욱 불어넣을 수 있는 신탁방식 정비사업 카드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신탁사들은 도시정비사업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 조합 지도부의 비리를 막고 시공사와 갈등에서도 더 전문적인 협상력을 갖추고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자금조달도 잇점으로 꼽힌다.
다만 업계에서는 신탁방식의 효율성을 놓고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장점도 단점도 흐릿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2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3단지 재건축 사업 추진과 관련해 조합 방식과 신탁 방식을 놓고 소유주 투표를 할 예정이다.
상계주공3단지 재건축준비원회 관계자는 "소유주 투표를 이달 말 중으로 진행하고 투표 결과는 8월 초에 집계가 완료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일 하나자산신탁과 한국자산신탁은 상계주공3단지 재건축 사업 주민설명회에서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추진 방식과 경쟁력을 설명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상계주공3단지 인근 상계주공 5단지는 이미 2021년 5월 한국자산신탁을 사업시행자로 지정한 뒤 올해 1월 GS건설을 최종 시공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 주요 정비사업지인 여의도와 목동 노후 아파트 단지 등이 신탁 방식을 택하면서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잡고 있다. 여의도 내 재건축을 추진하는 16개 단지 중 7곳이 신탁 방식을 택했다. 목동 9단지와 10단지, 14단지도 신탁사를 선정했다.
이처럼 서울 지역 주요 도시정비사업지에서 신탁사의 존재감이 부쩍 높아진 이유는 달라진 부동산 경기 때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인한 자금 시장 경색으로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되고 공사비 인상에 따른 시공사와 갈등이 대두되고 있다.
신탁사도 속도감 있는 사업과 함께 최근 악화된 건설 경기에서 대응할 역량을 갖췄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업을 따내고 있다. 이외에도 신탁 방식은 정비업계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자금관리 문제에서도 투명하다. 정부도 지난해 8·16 대책을 통해 신탁사 사업시행자 지정요건을 완화하는 등 신탁사업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다만 업계에서는 신탁방식을 통한 사업 추진 효과를 놓고는 평가가 갈린다. 특히 자금조달 관련해서는 대형건설사와 중견건설사의 온도차가 뚜렷하다. 대형건설사의 우량한 신용등급을 봤을 때 신탁사의 자금조달 효과가 빛을 발하지 못하다는 평가다. 중견 건설사 입장에서는 사업지 하나 하나 자금 조달에 따른 재무 부담이 적지 않아 오히려 신탁사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조합원 간의 갈등이나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을 일정 부분 방지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신탁사와 조합 간의 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신탁사의 높은 수수료율 탓에 최근 강원 강릉시 이화연립 소규모재건축조합은 계약을 맺은 무궁화신탁과 계약을 해지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삼풍아파트도 소유주 간 조합 방식과 신탁 방식을 놓고 내홍을 겪는 등 신탁 방식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장담하기 어렵다.
신탁사의 높은 수수료율은 향후 있을 공사비 인상이나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 비용 등을 미리 지불하는 측면이지만 조합 내부에서 의사결정이 빠르고 단합이 잘 된다면 신탁사를 굳이 선정해야 하냐는 목소리도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이 규모가 크고 조합원이 많다면 최근 분위기에서는 신탁 사업이 나쁠 게 없다"면서도 "인허가 기간이 앞당겨지는 부분 등의 장점도 있지만 신탁사에 지불하는 수루료가 고스란히 분담금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부에서 빠른 의사결정을 전제로 조합 방식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