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도심 주택 공급 확대와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이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논란이 다시 불붙으며 정비시장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51개 단지, 약 1만8000가구가 재초환 부담금 부과 절차를 앞두고 있다. 조합원 1인당 부담금은 평균 1억원 이상, 일부 단지는 최대 4억5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강남권 반포 현대(센트레빌아스테리움), 서초구 방배동 신성빌라(방배센트레빌인더포레), 송파구 힐스테이트e편한세상 문정 등 대형 단지뿐 아니라, 대구 수성구 범어우방1차, 남구 대명역골안, 부산 대연4구역 등 지방 단지들도 대상에 포함돼 있다.
서울 송파 재건축 아파트를 시민이 보고 있다. (사진=연합)
특히 강남권을 중심으로 ‘재초환 1호 단지’의 등장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나오며 조합원들은 사업 일정을 조정하거나 국토부에 부과 중단을 요청하는 등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전국재건축정비사업조합연대(전재연) 등 70여개 조합은 국토부에 공식 공문을 제출하고 행정소송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정책 방향 시험대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재건축을 통해 발생하는 과도한 이익은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동시에 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해 제도 개선의 여지를 열어뒀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아직 재초환 제도에 대한 명확한 정책 방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국토부는 현재 부담금 산정 기준에 대한 통계 논란과 조합들의 부과 중단 요청을 함께 검토 중이고 실제 부과 절차는 사실상 보류되고 있다.
정치권 내 의견도 엇갈린다. 더불어민주당은 “과도한 개발 이익은 공공 자산으로 환수돼야 한다”며 제도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재초환은 주택 공급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라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관련 폐지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나 여야 간 대립으로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 사업성 악화 현실화…재건축 동력 꺾일까
현장에서는 재초환 부담이 재건축 사업의 추진 의지를 근본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공사비 상승과 분양가 인상으로 이미 수익성이 저하된 상황에서 억대 부담금까지 더해지면 조합의 사업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단지에선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파라곤, 강남구 청담 e편한세상 3차 등에서는 부담금 체납과 관련한 조합 내부 분쟁과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조합원들은 “1990년대에 지어진 노후 단지 중 용적률이 200%를 초과하는 지역은 재초환이 유지될 경우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장기적으로는 서울과 수도권의 공급 위축 우려도 제기된다.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이 전체 신규 주택 공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다. 재초환 부담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시장 전체의 주택 공급 동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 산정 기준·통계 신뢰성 불신…제도 개선 목소리 확산
재초환 부담금 산정 기준의 불명확성과 공정성에 대한 불신도 현장의 반발을 키우고 있다.
최근 한국부동산원의 집값 통계가 실제 거래 가격보다 과도하게 높게 반영돼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부담금 산정 기준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조합원들은 통계 왜곡으로 인해 실제보다 높은 금액이 부담금으로 책정됐다고 반발하며 정부 통계 산정 방식 개선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성명 발표, 캠페인 등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조합과 업계는 재초환의 전면 폐지보다는 제도 합리화와 유예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규제의 목적은 존중하되 공급 활성화와 정비사업 추진이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공급 확대 시험대…정부 결단 시급
전문가들은 재초환이 대표적인 재건축 억제 규제로 작용하며 도심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의 실효성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서울의 경우 정비사업 없이는 신규 주택 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제도 개선 여부가 향후 주거정책의 성패를 가를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시장의 불확실성이 장기화되고 재건축 사업 정체와 전체 주택 공급 체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정부가 공급 확대만 외칠 것이 아니라 집값 급등 시 일관된 세제 기조를 유지하며,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실행 로드맵을 제시해야 규제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